각자도생의 시대인가?

2021.06.24 10:34:49 제925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22)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후진국형 화재사고가 또 발생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한 명이 순직했다. 지면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늘 그렇듯이 현대식 건물에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경보 신호는 무시되었다. 게다가 화재 발견자들의 신고도 보안요원들이 무시했다고 한다. 우리사회가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포인트이다. 조그만 동네 치과도 매년 실시해야 하는 필수 법정 의무교육이 산더미 같은 이 시대에 최고 물류센터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사회는 애매하게 만만한 치과의사들만 못살게 구는 것일까. 일선 치과는 매년 개인정보보호 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아동학대 신고의무 교육, 긴급복지 지원 신고 의무자 교육, 결핵 감염 예방교육을 받아야 한다. 작은 동네 치과도 이런 상태인 시대에 대기업 물류센터에서 이런 후진성 화재사고가 발생한 것은 제도와 현실이 따로 작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와 현실이 따로 작동되는 나라를 후진국이라 하고, 회사는 불량회사라 한다. 광주붕괴사고 등 최근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사회 근간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질서와 도덕성이 무너진 결과라 생각한다.

 

과거에 이와 유사한 시기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생하기 직전이다. 당시 선각자들이 전쟁에 대한 우려를 제시하며 대비할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 무시됐고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콘센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해도 화재신고를 보안요원이 두 번이나 무시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은 것 또한 시설관리자와 관련 기관의 숨길 수 없는 과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조금 확대 해석을 하면,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모든 건물이 대상이 가능하다. 화재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한 화재를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이번 사건처럼 책임감 있는 보안요원과 시설관리 요원이 없다면 이와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며, 그 사람의 책임감은 개인적인 요소도 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기 때문이다. LH사건에서 보듯이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의 이익과 직업적 책임감에서 멀어져 개인적 이익으로 흘러가 있다. 절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개인의 도덕성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회적 도덕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개인적 도덕성에 매달려야 하건만, 이미 우리 사회는 ‘정의’란 단어가 ‘내로남불’에 밀리며 그 또한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결국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각자도생을 해야 했던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필자의 부모님은 평생을 두 분이 같이 택시를 타지 않으셨다.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와 흥남부두에서 영화‘국제시장’의 소재인 피난민 마지막 배를 탔던 어머니는 늘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며 사셨다. 커피숍이나 식당을 가셔도 언제나 탈출을 빨리할 수 있는 입구 쪽에 앉으셨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가 두 분을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아야 하는 ‘각자도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위험에 대한 경고가 모두 무시되고 있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 정의가 경시되면서 개개인들은 ‘각자도생’으로 살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런 사건이 몇 번 더 반복되면, 슬프지만 필자도 커피숍에서 입구 쪽에 자리를 잡는 날이 올듯하다. 물론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세 마리가 더 보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오늘 우리나라 총부채가 5,000조원을 넘었다는 기사와 금리 인상을 조만간 할 것이란 기사가 보인다. 한국은행은 집값 급락을 경고했다. 사회 전반에 위기와 경보들이 들리건만 모두가 무시하고 있다. 물론 일선 치과에게 강요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많은 필수교육처럼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규제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하나도 제대로 지키기 어려워졌거나 포기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광주 붕괴사고에 이은 쿠팡화재사고가 더 큰 사고의 전조 현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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