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배분 투자에서 ‘현금’ 비중의 의미

2021.07.29 13:32:13 제930호

최명진 원장의 자산배분 이야기 20

자산배분 투자에서 현금의 역할은 앞선 연재의 기하평균 수익률과 포트폴리오 분산에서 조금 다룬 적이 있다. 섀넌의 동전던지기 게임은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각각 반반이며, 투자자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2배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반만 돌려받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다. 매번 100%의 이익을 보거나 50%의 손실을 본다. 이 게임의 산술평균 기댓값은 1.75이지만 기하평균 기댓값은 1.00이다. 동전던지기 게임을 무한대로 할수록 기하평균 기댓값에 수렴하고 원금은 제자리에서 불어나지 않는다.

 

섀넌은 매번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자산의 절반을 베팅하며, 나머지 절반은 현금으로 보유하는 식으로 게임을 변경했다. 산술평균 기댓값은 1.125로 낮아졌지만, 기하평균 기댓값이 1.06으로 늘어났다. 반복할 때마다 6%의 복리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게임이 된 것이다. 이렇게 50:50 리밸런싱 전략을 사용하면 투자금이 우상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복리로 장기투자해서 목돈을 불려 나가기 위해서는 산술평균 수익률이 아닌 기하평균 수익률로 투자성과를 판단하고 투자의사 결정과정 중에 기하평균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론적으로 생각만 해보는 것과 실전투자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모든 자본을 한 곳에만 집중해 투자하는 것, 이른 바 ‘몰빵투자’를 자제하고 포트폴리오에 여유 현금을 보관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시장이 좋을 때 지금 주식을 사면 확실히 오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금을 남겨 놓아서 예상 수익금이 줄어드는 것이 잠재적 손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는 얻는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난 이익과 손해 중에서 손해를 2배 이상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손절매(stop-loss, 주가가 내려갈 때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서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는 것)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에 일어날 수익은 실제로 일어난 수익이 아닌데도 대부분은 투자할 때 현금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로 분산투자를 하는 투자자조차도 포트폴리오 구성에 현금이 없거나 최소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산배분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산배분 투자는 △위험자산 = 주식 △안전자산 = 채권 △대체자산 = 금 등의 다양한 자산군을 활용한다. 포트폴리오 내의 자산군들이 상관관계가 낮을수록 전체 포트폴리오의 기하평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현금은 다른 자산군보다 의미 있는 비중으로 편입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유명 자산배분 헤지펀드의 매니저들조차 자산군의 상관관계나 위험을 조절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데 초점을 맞추다가 과도한 레버리지로 파산하기도 한다.

 

리스크 패리티(Risk Parity) 전략은 포트폴리오의 전체 변동성에 특정 자산군이 기여하는 정도를 조절한다. 자산배분 투자의 대가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CEO로 있는 세계 1위 헤지펀드 브릿지워터(Bridgewater Associates)가 자산배분 패시브 펀드인 ‘All Weather’에서 주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코로나 위기가 일어난 2020년에는 브릿지워터의 대표 펀드인 ‘Pure Alpha’와 ‘All Weather’는 -10%대의 YTD를 거둬 실망을 안겨줬다.

 

특히 2020년 3월에서 5월 사이의 YTD가 -20%대를 기록하면서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를 하지 못했다. 레이 달리오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All Weather’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던 개인투자자들이 같은 시기의 손실이 절반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브릿지워터가 리스크 패리티 전략에 대한 자신감으로 인해 레버리지 파생 자산상품을 편입했고 포트폴리오에 현금 비중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필자의 포트폴리오는 현금을 10% 보유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였는데, 2020년 3월 위기 때 최대손실이 -3%에 그쳤다. 현금 비중이 25%나 되는 영구 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도 당시에 거의 손실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현금은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에서 독특한 역할을 한다. 투자(investment, 投資)는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돈이나 시간을 쓰는 것을 말한다. 생산활동과 관련되는 자본재의 총량을 유지하거나 증가시켜서 추가 자본을 얻는 것이다. 반면 투기(speculation, 投機)는 생산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여기서는 투자를 이익추구를 위한 자산매입의 관점에서 다루기로 한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자산군을 편입해 전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춘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의 최종적인 수익은 각 자산군을 비중에 맞춰 매매(리밸런싱)를 할 때 생긴 누적 손익의 합이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것을 패시브하게 반복해 수익을 누적시키는 원리다. 모든 자산은 저마다의 가격 추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주식이라는 위험자산을 편입하는 이유는 주식을 저가에 매입하고 고가에 매도하기 위함이다.

 

주식을 헤징하는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때는 주식이 떨어졌을 때 채권이 올라서 채권을 고가 매도하고 주식을 저가 매수하게 된다. 명목화폐 시스템의 중심인 주식-채권을 헤징하는 대체자산도 마찬가지다. 명목화폐 시스템이 위험해질 때 반대편에서 이익을 내서 손해를 최소화한다. 모든 자산군은 리밸런싱 수익을 위해 매입하고 적절한 때에 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현금은 ‘자산을 매입하지 않아 발생하는 기회비용’이다. 자산들의 가치가 우상향하고 있는 상황에는 수익금이 줄어드는 기회비용이 발생하지만, 모든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아직 매입하지 않는 자산을 추가로 더 좋은 가격에 살 기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현금을 하나의 자산으로 분류하고 ‘현금도 미래의 기대수익률을 낼 수 있는 자산’처럼 편입하고 있다.

 

위험자산, 안전자산, 대체자산 모두 매입함으로써 앞으로의 수익률을 기대하지만, 현금은 거꾸로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다른 자산들을 싸게 살 수 있는 미래의 기회비용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현금의 비중도 채권 같은 안전자산과 비슷한 CAGR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경제 전망이 가장 어둡고 가장 공포스러운 구간’이다. 2020년 팬데믹 위기를 복귀해보면 3월 초까지 주식시장은 많이 하락했지만 안전자산 미국 국채와 대체자산 금이 상승하며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헤징했다. 곧이어 각국의 록다운(Lockdown) 소식과 가장 비관적인 팬데믹 전망과 함께 진정한 공포구간으로 들어서자 위험자산 주식은 물론이고 안전자산 채권, 대체자산 금까지 모두 하락했다. 환율이 급등하고 기축통화인 달러 인덱스가 최고점을 경신했다. 세상에서 명목화폐인 달러가 가장 귀한 시기다. 당시 원-달러 환율도 1,3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만약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에 적절한 현금(달라) 비중이 없었다면 레이 달리오의 ‘All Weather’ 포트폴리오처럼 견디기 힘든 손실을 겪었을 것이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의 진정한 리스크 헤징을 위해서는 리스크 패리티를 위해 각 자산군을 편입하는 것에 더해 마지막으로 각 자산군을 매입하면서 생기는 미래의 기회비용을 헤징하기 위한 현금 비중을 일정 부분 편입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자산배분 투자에 필요한 위험자산, 안전자산, 대체자산, 현금을 순서대로 살펴봤다. 투자자 각자가 기대하는 수익률과 감당 가능한 위험이 다르므로 각자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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