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심리

2021.09.30 13:17:54 제937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34)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추석 연휴에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라서 선택했지만, 최근 드라마들이 필자와 철학이 안맞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로 부도덕한 내용이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상에서 매 순간 직면하는 사람들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오랜만에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다.

 

손에 닿을 듯이 눈앞에 걸어놓은 수백억원 돈뭉치는 게임 참가자들의 잠재돼있던 욕망과 욕심을 증폭시켰다. 탐욕이 도덕과 양심을 이기는 순간에 갈등하는 인간적인 이도 있었다. 종교와 위선 속에 감춰져 있던 탐욕을 표출하는 이도 있었다. 절대적으로 악한 이도 있었다. 일반인은 늘 욕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지나쳐 버리게 된다.

 

작가는 ‘아이들 게임’이라는 형태를 통해 실수하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마음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1등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은 잔혹했지만, 현실사회에서 역시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떤 게임이 될지, 어떤 규칙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 역시 현실 속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상점은 어떤 고객이 올지 모르고 병원은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른다. 또 그 고객의 심리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상대방 구슬을 모두 빼앗는 게임인지 모르고 최선의 파트너를 선택한 사람들은 가장 믿던 사람과 죽음을 담보로 한 게임을 하게 됐을 때 사람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했다.

 

머리가 좋은 자는 사기를 치며 합리화했고, 보통 사람은 살기 위해 죄책감 속에서 속임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대신 죽었고, 힘이 센 양아치는 어쩔 수 없이 정당한 경기를 했다. 아내에게 이기고 살아 남아온 남편은 자살을 선택했다. 게임을 마치고 살아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참가자 모습은 마치 매일 삶의 현장 일터에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탈진하여 겨우 현관문을 여는 사람들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참가자들이 이기면 돈을 갖는 게임의 룰은 현실 일상에 널려있다. 우선 단적으로 주식 시장이 있다. 1억원을 넣어두면 불과 몇 분 사이에 직장인 한 달 월급이 오르고 내린다. 자신이 선택해 산 주식이 오르면 이기는 것이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주식하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선택은 마음속에서 삶과 죽음을 오고 간다. 내일 주식시장이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상황은 어떤 게임이 시작될지 모르는 참가자들과 같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터에 나가야 하는 이들은 월요일에 출근이 두려워 월요병을 겪는다.

 

삶의 현장은 늘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직장은 언제나 같은 장소일 수 있으나 매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매일 새로운 게임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돈이 없어 최악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에게 현실 세상은 지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한편으로 돈이 많아 삶이 재미없는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인 것을 원하다가 결국엔 극단적인 잔혹한 게임을 즐기는 지경이 되고 인성을 상실한 동물적인 삶에 이를 수 있다고 작가는 경고한다.

 

작가는 사람 한 명의 목숨값으로 1억원을 설정했다. 1억원은 한 달에 100만원씩 10년을 저축해야 하는 돈이다. 가끔 필자가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묻는 질문 하나가 있다. “머리로 계산하지 마시고, 2초 내로 답해주세요. 10억원은 매달 100만원 씩 몇 년을 저축하면 모을 수 있다고 느낍니까?” 얼마 전 아는 지인이 자식이 빚을 내 집을 사도 되냐는 질문을 받고 필자는 “저라면 10억원으로 집을 사느니 한 달에 330만원씩 30년을 쓰는 것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최근 이자가 싸다 보니 사람들이 1억원이나 10억원의 가치를 착각하고 있다. 월급쟁이가 매달 100만원씩 저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착각을 만들어내고 돈을 빌려주며 ‘영끌’해 집을 사게 만든 자들이 드라마에서 게임을 만들고 참가자들을 경주마로 생각하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드라마처럼 현실에도 게임을 멈추는 선택은 늘 가까이에 있다. 탐욕이 막을 뿐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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