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Sapiens에서 Homo Ludens로_연주하려면 치아부터 빼라고요?

2021.11.26 16:14:18 2021FW

글·사진 / 홍현주 대표(코리아나매니지먼트)

 

공연 사진들을 정리하며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은 치아에 대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내었다. 전공이 관악인 탓에 선후배 모두 모여서 연습하다 주변 누군가 갑자기 이를 뺀다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미어캣처럼 꽤나 호들갑을 떨며 시끌벅적했더랬다. 송곳니 때문에 바람이 새서, 혹은 주법이 비뚤어져서 제대로 연주하려면 이를 빼고 와야만 제자로 받아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소문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해외로 나간지 1~2년차의 유학생이었다.

 

그래도 떠날 당시 우리들끼리는 첫 손가락에 꼽던 유망주였고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성공사례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 귀국 후 데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한꺼번에 버무려져 한참 동안 우리들의 논란거리가 되곤 했다. 논란의 요지는 유학 가서 이를 뺀 친구 치고 제대로 연주자로 성공한 사람이 없으며, 심지어 유학 가기 전의 소리보다도 못한 소리로 귀국했다는 선배들의 으름장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두 편으로 나뉘어 “지도교수와 독일 치과의사의 단호한 진단대로 발치했으니 더 열심히 연습해서 극복했어야 한다”는 부류와 “유학까지 갔는데 극복하고자 노력을 안 했을 리가 없으며 본인이 그간 그 치아의 생긴 모양대로 연습해 왔으니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괜히 돌팔이(!) 만나 신세 망쳤다”는 부류로 실랑이하다 늘 결론은 이를 빼고 나서 정말 연주 잘하게 돼서 돌아오는지 두고 보자로 끝나곤 했다.

 

유럽의 덩치 큰 바바리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유학생에게, 치아를 빼서라도 그들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었던 절실함은 면벽 수도에 가까운 살인적인 연습시간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연약한 입술은 물집을 달고 살기 일쑤고 입술 안쪽은 양쪽 송곳니에 눌려 늘 작은 구멍을 달고 살았노라고 그 시절을 살아내 온 선배들은 라떼의 무용담으로 군대시절의 축구 얘기처럼 제자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1년에 두세 번은 들을 만큼 종종 듣던 얘기였고 결국 발치를 했다는 얘기와 함께 선배들의 으름장대로 우리는 발치 이후 드라마틱한 멋진 음색으로 금의환향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예술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내린 결단은 그간의 고된 연습으로 연마한 본인의 음색마저도 되찾지 못하고 결국은 전문연주자의 길을 내려놓았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고 있을 뿐, 어떤 선택이 정답이었는지는 당사자만 알 뿐이다.

 

 

어쨌든, 이런 선행학습으로 우린 악기를 시작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치아, 특히 치열부터 확인하게 되었고 특히 트럼펫, 트럼본 등 입술에 닿는 마우스피스의 둘레가 송곳니에 걸리는 금관악기는 시작부터 퇴짜를 놓곤 했다. 악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기가 유학시절에 겪었던 피 튀기던 연습시간과 연주자로 성공하려면 이를 뽑아야만 성공한다던 독일 치과의사의 단호한 진단까지 들려주면서 말이다. 덕분에 금관악기건 목관악기건 부는 악기를 택한 연주자에게 치아의 중요성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가 부실하면 연주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두주불사의 주량을 자랑하던 어느 교수님은 정년을 앞두고도 정기적인 독주회를 개최해 우리를 주눅 들게 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독주회를 연기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 19 때문에 오랜만에 마련된 술자리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신 독주회 연기의 이유는 바로 치아 때문이었다. 임플란트 하나 때문에 연습만 하려고 하면 머리가 울려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수님~ 그건 임플란트 때문이 아니고 약주 때문에 잇몸이 내려앉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치과의사를 동생으로 둔 내 입장에서 그만 뾰족하게 질문이 나가고 말았는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쯤 되면 휘발유처럼 노발대발하실 줄 알았던 노교수님께서 의외의 슬픈 표정으로 수긍을 하신 덕분에 불벼락을 피하긴 했지만, 연주회까지 미루게 한 치아와 연주의 역학관계는 순식간에 유학생들의 전설 같던 발치 얘기까지 올라가 회귀분석까지 언급되며 다시 시끄러워졌다. 애주가의 삶과 연주자의 삶에서 이제 선택의 기로라며 고민하시던 교수님은 또다시 만취가 되어 귀가하셨고 연주와 치아의 연결고리는 궁금증을 남긴 채 그렇게 또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버렸다.

 

바쁜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 궁금증은 사진 한 장에서 풀렸는데, 바로 최고의 연주자였던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의 연주 사진 때문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색소폰은 ‘딴라라’였으며 영화 ‘Dying Young’의 멜로디라도 따라 할라치면 ‘날라리’로 몰려 혼쭐이 나던 엄한 시절이었는데, 딴따라가 연주도 잘하고 하물며 건방(!)지게 악기까지 삐딱하게 부는 게 아닌가? 하늘 같은 교수님의 지도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리다는 우리의 교만한 배움론으론, 그는 분명 송곳니 때문에 바람이 새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고 입술이 아파 장시간 연습도 할 수 없어야 했으며, 최고의 연주자는 더더욱 될 수가 없는 치열의 소유자였다. 정석이 있지만, 정석이 아니어도 잘만 연주하면 된다는 묘한 타협점이 밤늦도록 연습하는 우리에게 연대의식과 너그러움을 주었고 그 후론 우리 가운데 누구도 주법이 틀리다고 손가락질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예술은 예술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즐길 때

지금은 누구도 악기를 하기 위해 치아를 빼지 않으며 예전처럼 온통 빨개진 얼굴로 힘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재능있는 어린 연주자들은 요령있게 편안한 모습으로 무대를 즐기며 뛰어난 기량으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제는 유튜브로 혼자 악기를 배울 수 있고 레슨의 고수들만 모인다는 사이트와, 시간별로 고수의 레슨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도 생겼다. 덕분에 누구나 한 가지의 악기는 쉽게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주민센터, 카페, 밴드 등 생활예술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언제든 합류해 합주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로 전국의 문예회관과 문화원, 박물관, 미술관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생활을 위해 동아리 활동 지원과 함께 매년 생활문화예술제를 개최해 발표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제 예술은 예술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즐길 때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취미로서뿐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일례로, 나의 또 다른 자매는 아들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며 함께 취미로 가져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며 중국제 바이올린을 구입해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하필 바이올린이라니… 손으로 짚어가며 음정을 맞추는 현악기는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하는 게 상식인 나로서는 편히 추천할 수 없어 넌지시 다른 악기 쪽으로 권유해 보았다. 하지만 예쁜 미모에 활달했던 그녀에게 있어 ‘아무나 쉽게 시작할 수 없는 바이올린’에 대한 도전은 오랫동안 본인을 괴롭혀왔던 ‘음치’ 탈출에 대한 보상이었으리라… 지금은!! 노래 한 곡으로 모두를 배꼽 잡게 할 정도로 치명적인 음치였던 그녀는 동네 챔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매년 정기 연주회로 꾸준히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관악기 바순 전공자인 나 역시 종종 붙들려가 그녀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회를 함께 하는 사태까지 만들어냈다. 흔치 않은 악기인지라 다른 사람 쓰라는 말도 못 하고, 연주회에 즉흥적으로 바로 투입돼야 하는 상황은, 어떤 연주회보다 힘들어서 ‘프로 잡는 아마추어’라는 말을 실감했었다. 그래도 살림만 하며 아들 둘과 실랑이하다 연주회를 한다며 다시 예쁜 모습으로 무대에서 나와 함께 연주회를 하고 가족들의 꽃다발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내 동생이지만 뿌듯하고 기분 좋은 기억이 되곤 한다. 지금은 음치를 벗어나 성가대로 활동하며 동네 형님(!)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물론 비상금을 털어 바꾼 그녀의 고가 바이올린은 그녀와 나만의 비밀.

 

 

또 다른 사례는 KBS ‘남자의 자격’으로 전 국민의 화제를 일으켰던 ‘청춘합창단’이다. 박칼린 감독의 지휘와 오디션에 참여한 분들의 사연으로 많은 감동을 주었던 이 단체는 방송 후로도 매주 꾸준히 연습하며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차에 연주회가 하고파 물어물어 내게 찾아오셨다. 당시만 해도 아마추어가 쉽게 정규 공연장에 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중년을 넘어선 합창단의 고집 센 부탁이 어려워 연습상황을 보고 상의하자고 둘러대며 찾아간 첫 연습에서 평균나이 70세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날의 연습 참관 이후로 청춘합창단은 우리 팀이 되어 많은 연주회와 인간극장 등 방송으로도 주목을 받았지만, 예술의 전당 연주회와 해외 투어까지도 종횡무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읽기도 어렵고 외워지지도 않는 바흐의 레퍼토리와 러시아의 민요들을 한글로 써가며 가사를 외우고 곡에 맞는 동작까지 몸에 익히며 해낸 결과 늘 청춘합창단의 음악회는 매진 사례다. 진한 절실함이 배어나는 행복한 연습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 손주들을 봐주러, 진료하러, 회사로 총총히 헤어지지만 그래도 연주회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체 오디션과 파트 연습으로 코로나가 종식되길 기다리며 지금도 개인 연습에 매진하고들 계신다. 이제 청춘합창단은 그분들의 삶에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으며 연주회를 위해 연습을 하고 건강을 돌보며 일정관리를 하는 그 모습은 우리가 맞이해야 할 노년의 모습으로 더할 나위 없는 본보기이리라.

 

생활예술이 다양하게 활성화된 덕분에 이제는 생활예술가로 부캐를 갖게 된 많은 분들이 무대에 오른다. 마치 숨겨진 보석 상자를 열 듯 보란 듯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관객을 끌어모은다. 딴따라 짓을 하는 친구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공연장에 오게 된 친구들은 언제 그렇게 늘었냐며 나도 좀 끼워달라며 질문을 쏟아내지만, 예술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며 너무 힘드니 사서 고생하지 말라고 잡아떼기 마련이다. 공연 후 맛보게 될 성취감과 꽃다발 세례, 두고두고 회자 될 친구들의 부러움은 부캐가 주는 덤이다. 더딘 연습의 조급함, 연주의 즐거움, 무대의 긴장감을 모두 경험해 보신 이분들이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진정한 패트론으로 거듭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Homo Sapiens에서 Homo Ludens로. 생각하는 인간에서 노는 인간으로 진화한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게 될까. Homo Ludens의 지향점은 확실하다. 행복한 인간인 것이다. 내가 행복해서 옮겨지는 따뜻함은 마치 온기처럼 내 주변도 행복하게 만든다. 힘들 때 나를 기운나게 해주는 노래 한 소절, 그림 한 점은 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멜로디를 악기로 연주해보는 건 행복을 넘어 희열까지 맛보게 한다. 특히나 대부분의 관악기는 하루만에도 소리를 내고 음계도 배울 수 있다. 부는 악기는 단전호흡과 폐활량을 늘려주어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리코더면 어떻고 색소폰이면 어떤가. 이제 용기 내어 시작해 볼 일이다.

 

예술은 가치재로 인식되지만, 필자는 소비재라 주장하고 즐기라고 이야기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예술을 소비하고 향유할 때 비로소 예술은 가치재로 우리 곁에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예술을 가둬놓고 감상하는 때가 아니라 이제는 용감하게 브레멘의 음악대처럼 축제의 퍼레이드에도 참여하는 아마추어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다. 못하면 좀 어떠하랴. 남에게 피해도 안 주고 이렇게 즐거운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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