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기다림의 의미

2022.05.04 11:51:26 제966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63)

출근길에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지하 2층에서 3층으로 내려가는 코너에 SUV 차량 한 대가 주차돼 지하로 내려가는 회전을 방해하고 있었다. 코너를 돌지 못하고 6m 정도 떨어져서 기다리는데 1분 이상 지나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자세히 보니 주인이 차를 세워 놓고 먼지떨이개로 차를 닦고 있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서 신호를 주어도 힐끗 쳐다보고는 할 일을 마저 다 할 듯이 조금 더 닦고 트렁크에 물건을 넣고는 천천히 걸어서 차를 몰고 그냥 가버렸다.

 

필자는 최소한 미안하다는 고개 인사나 손인사 혹은 비상 깜빡이, 아니면 빨리 움직이는 모습 등을 기대했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이 그냥 재수 없다는 느낌으로 횅하니 가버렸다. 황당하면서 뱃속 저 밑에서 욕이 올라왔다. 순간 저런 사람들로 감정을 소모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털어버렸다. 주차공간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막고 있을 정도로 배려와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혹자는 크락션을 울리거나 근육맨이라면 내려서 한마디를 해주었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지만, 필자는 굳이 더 이상의 인연을 맺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가 내 출근길을 방해한 것도 무슨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역할은 나의 출근길 시간을 2분 정도 방해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따지거나 어필을 한다고 해서 공감할 사람도 아니다. 뭔가를 더 행하면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 시작이 나쁘니 결과가 좋게 끝날 가능성은 0%이다.

 

이런 경우에 필자는 영화 ‘사랑과 영혼(Gost)’을 생각해본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귀신은 악당으로부터 여자 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한다. 육체가 없는 영혼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겨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종교적인 천사나 신장 혹은 조상님들이 필자를 돕기 위하여 2분간 지체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전환시켜 본다. 가끔 뉴스에 지각해서 비행기를 놓치고 살아남았거나 건물 붕괴 직전에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이와 유사하게 종교적인 신이 가피를 주기 위해 2분의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을 하면 억울함과 분노가 한 번에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뀐다. 2분 기다림이 삶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다리는 2분이 만들어내는 분노의 본질을 파악해보면 자기애다.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누군가로부터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분노이며 이기적 자기애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사회 정의에서 시작하는 불의에 대한 분노와는 다르다. 아기에게서 장난감을 빼앗을 때 보이는 분노처럼 일차원적이고 본능적인 자기중심적이다. 이성을 기반으로 한 불의에 대한 분노와는 다르게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감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조그만 자극에도 분노가 제어되지 않고 폭발하기 쉽다.

 

최근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폭력사건이나 살인사건을 보면 유아적인 자기애적 분노가 제어되지 않고 분출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개인적 성향에도 영향을 강하게 끼쳤다. 천안 노래방 사건도 우연히 노래방 화장실에서 마주치며 시비가 붙어서 2명이나 사망한 사건이다. 사회 전반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충동적 분노조절장애 모습이다. 치과 외래에서도 예약 시간에서 조금 늦어지면 참지 못하고 바로 컴플레인을 하는 경향이 예전에 비해 좀 더 많아졌다.

 

심지어 치료시간도 환자 자신의 일정에 맞춰 짧게 해달라는 주문까지 하는 경우도 늘었다. 환자의식 속에서 이미 의료는 서비스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백화점에서 구매하듯이 소비자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슬프지만, 의료를 서비스로 빠르게 의식 전환시킨 당사자가 의료인 자신들이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

 

2분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기보다 무시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분노를 유발시킨다. 우연히 발생한 2분 변수를 ‘신의 가피’라고 생각을 전환하면 하루를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다. 한 생각이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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