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PDF 바로가기

[논 단] 부친의 이장과 함석태 선생의 표지석

URL복사

박용호 논설위원

7년 전 현충원으로 부친의 이장을 결심한 것은 부친의 메모집을 접하고서였다. 영어교사 시절, 익숙한 검정표지의 학생들 개인생활기록부에 만년필로 출생부터 상벌사항이 한자로 촘촘히 기록되어 있었다. 검단에 있었던 황해도민묘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사육장으로 소란스러워질 무렵이었다. 국가유공자 대상여부를 알아보라는 모친의 당부가 있었다. 이제 와서 국가유공자라니…

 

하지만 그 순간 머리에 반짝 섬광이 스쳤다. 부친메모 중 6·25 전쟁 중 대위로 화랑무공훈장 수여기록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 년 여간 국방부와 보훈처에 통화·서신도 수차례 왕래하고 집사람도 서류접수로 발품을 팔고, 컴퓨터와 씨름했다. 기록된 군번과 메모를 근거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훈장을 되찾고 무공수훈자 대상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전적지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골을 획득하여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는 심정이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창 진료 중이었는데 국방부 정훈장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친이 수훈대상자로 인정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왜 이제야 신청하느냐고, 훈장은 사단장이 직접 수여하든가 우편으로 우송해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부모께 할 일을 했구나, 잔잔한 감격이 밀려왔다.

 

부친이 보성전문 법과(고려법대)를 졸업한 것은 1943년 중일전쟁 막바지였다. 해주지방법원에 근무하던 부친은 특별학도병으로 입대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생사와 운명이 걸린 일. 동원직원들의 재촉에 집에도 소식을 끊고 숨어 다니길 한 달 여, 형사들이 매일 찾아와 식구들을 괴롭혔다. 결국 식구들의 고초를 감당하기 어려워 입대하고 만다. 연안읍 역전에서 성대한 출정식 후 평양에서 4주 훈련 후 일본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전선으로 투입된다.

 

지금도 어려서 부친께 들은 이야기가 생생하다. 새벽에 기상하면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오십대의 일본인 군무원이 따뜻한 세숫물과 수건을 딱 받쳐 들고, 당번병이 장검과 권총요대를 채워주었다. 말 타고 장시간 산악지대를 행군하다가 졸아서 굴러 떨어져 죽을 뻔 했던 일. 민간인들 살육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던 일. 해방 후 4개 월 만에 천신만고 끝 귀국하였는데 악몽과 전쟁후증후군으로 한동안 시달렸다. 한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추석,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더니 “할아버지가 친일이었던 셈이네요~” 그 소리에 아무리 아들이라도 가족사 인식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요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논란이 시끄러운데, 아들도 좌편향 교육을 받은 감이 느껴진다. 반일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필자는 어려서 역사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다. 부친 전력을 누구에게 떳떳이 밝히기가 꺼려졌다. 왜 일본군 장교였느냐는 질문은 묵시적·본능적으로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 같은 것이었다. 당시 일본군 중위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부친이 동일 소속부대 장교일원과 촬영한 사진이 있는데, 난 어린 마음에도 자랑보다는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불가피했던 당시의 상황들이 공감되고 체험적 인지가 된다. “그때 할아버지가 지금 너보다 훨씬 어린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않겠니? 중일전쟁, 6·25 두 전쟁에 참전해 용케 살아 남으셔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천상 설교조에 아들이 수긍했다.

 

시야를 넓혀 우리의 직업적 대부인 함석태 선생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그는 일본치전 출신으로 정식교육을 받은 치과개원의 1호이다. 좌편향의 계급사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부르주아 출신에 일본유학 자체가 친일이고 종로에서 부유층만을 치료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총독을 저격했던 우국지사 강우규의 손녀를 양녀로 키웠으며(이런 배포와 경제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화재 수집의 활동과 일가견은 현재 고미술 관계자에게도 알려져 있으며, 한성치과의사회 초대회장으로 후진에 기여했다.

 

얼마 전 서울지부 회사편찬위원회 일원으로서 함석태 선생의 손자인 함각 선생을 조우한 적이 있는데 그도 연로하여 실증적 메모와 기억이 미미했지만 세부적인 사실들을 재확인했다. 동네 아마추어 역사가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취합해 동행했었다. 그의 최초 개업지 표지석 설치는 곧 우리의 역사다. 치과의학사는 정치사로 점철된 큰 줄기가 아니므로 좌우파 논쟁에서도 자유롭다. 역사교과서에 지석영이나 장영실 같이 한 줄만 언급되어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역사가 없는 현재는 없으며 구강보건에 기여한 선생의 역사 일호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함석태선생개원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들의 활약과 서울지부 회장의 정치력을 기대해 본다.


오피니언

더보기


배너

심리학 이야기

더보기
맞는 말이라도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살다보면 맞는 말인데 옳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맞다·틀리다’는 참과 거짓을 나누는 명제로 객관적인 관점이고, ‘옳다·그르다’는 주관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는 맞는 것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옳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은 선거에서 보였듯이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반대로 옳다고 하는 말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 잔소리나 혹은 직장 상사나 선생님, 선배 혹은 부모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전공의대표가 대학 수련 병원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의대 교수는 착취사슬 관리자, 병원은 문제 당사자”라고 표현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학병원 현 상태를 명쾌하게 한마디로 정의한 깔끔한 표현이었다. 다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사실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표현을 보면서 뭔가 마음이 불편함을 느꼈다. 수련의가 지도교수들을 착취의 관리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제식 교육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의료계인데 이런 도제식 교육적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술자는 교과서에

재테크

더보기

원달러 환율과 인플레이션

연고점을 경신하는 달러원 환율 원달러 환율(달러원 환율 같은 뜻이다)이 연고점을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4월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53.2원이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4월 9일은 장중 1,355원까지 올랐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천정이 뚫려있는 모양새다. 외환 당국이 방어를 하던 환율 박스권도 돌파된 상황이다. 환율이나 금리 같은 경제지표의 최신 가격을 단순히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환율 상승이나 금리 인하의 이유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올바른 해석을 바탕으로 실제 투자에 적용해 수익을 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매크로 변화의 표면적인 이유를 겉핥기 하거나 뉴스에서 제공되는 뒷북 설명을 뒤따라가기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2023년 초부터 일관되게 원달러 환율 강세를 대비한 달러화 자산의 중요성에 대해 본 칼럼과 유튜브를 통해 강조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투자에 적용해 작년 초 미국주식, 미국채, 금, 비트코인 등 원화 약세를 헤징할 수 있는 달러화 표기 자산들을 전체 총자산의 80%까지 늘려 편입했으며, 원달러 환율 상승의 리스크 헤지는 물론 추가적인 수익


보험칼럼

더보기

알아두면 힘이 되는 요양급여비 심사제도_④현지조사

건강보험에서의 현지조사는 요양기관이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 등에 대해 세부진료내역을 근거로 사실관계 및 적법 여부를 확인·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조사 결과에 따라 부당이득이 확인된다면 이에 대해 환수와 행정처분이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현지조사와 유사한 업무로 심평원 주관으로 이뤄지는 방문심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이 되는 현지확인이 있는데, 실제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조사 자체의 부담감 때문에 모두 다 똑같은 현지조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시 주관에 따라 내용 및 절차, 조치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조사가 현지조사인지 현지확인인지, 혹은 방문심사인지를 먼저 정확히 파악한 후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은 통상적으로 요양기관 직원의 내부 고발이 있거나 급여 사후관리 과정에서 의심되는 사례가 있을 때 수진자 조회 및 진료기록부와 같은 관련 서류 제출 요구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 이뤄진다. 그 외에도 거짓·부당청구의 개연성이 높은 요양기관의 경우에는 별도의 서류 제출 요구 없이 바로 현지확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방문심사는 심사과정에서 부당청구가 의심되거나, 지표연동자율개선제 미개선기관 중 부당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