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첫 번째 기사가 메르스 마지막 80번 환자 사망소식이다. 메르스가 처음 시작하여 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그 소식이 다른 메르스 환자들과는 달리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다. 그는 치과의사였다. 또한 35살의 장도 창창한 젊은 후배였다. 먹먹한 마음을 뭐라 표한하기 어려워 지면을 통해나마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에서 모든 일이 전혀 별개가 아님을 화엄경은 이야기하였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야기한다. 모든 종교는 발생되는 사건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들이 옳은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말라고 가르쳐준다.
어떤 치과 관련 신문의 기사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치과계도 쇼닥터 물의 잇달아’, ‘치대생을 유혹하는 마통(마이너스 통장) 여전히’, ‘치과 방문 시 KTX 비용지원’, ‘스케일링 공짜 진료 면죄부 주나’, ‘정부가 값싼 진료 부추긴다’라는 머리기사가 오늘따라 유난히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전통시장 한구석 고무대야 속에서 서로 몸부림치는 미꾸라지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필자 또한 그 안에서 그저 단지 꿈틀거리는 한 마리로 생각된다. 치과계의 이런 슬픈 기사들은 단지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내려가려는 미꾸라지 몸부림이다. 고무대야 속의 미꾸라지는 논두렁을 모른다.
부처님은 중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불쌍하여 슬플 비(悲)를 이야기하셨다. 자비(慈悲)이다. 한치 앞도 못 보고 한순간의 욕망과 욕심만을 따라 사는 중생이 불쌍하여 자애로움(慈)을 행하셨다. 장자는 소요(逍遙)를 이야기하였다. 소요란 스스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행함이 없이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자유이다. 그런 자유를 위하여 붕정만리(鵬程萬里)를 이야기하였다.
<<北冥有魚 其名爲鯤(북명유어 기명위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곤지대 불지기기천리야) 化而爲鳥 其名爲鵬(화이위조 기명위붕)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붕지배 불지기기천리야)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노이비 기익약수천지운)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시조야, 해운칙장사어남명자, 천지야) 남명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 곤이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은 몇 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 힘을 모아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덮는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간다. 남쪽 깊은 바다가 ‘천지’이다.>>
장자는 북쪽 바다 밑 깊은 곳에서 사는 물고기 곤을 이야기하였다. 북쪽 끝의 바다는 얼음에 뒤덮인 움직임이 하나도 없는 그런 차디찬 세계를 의미하며 그곳에 크기를 알 수 없는 엄청나게 큰 곤이라는 물고기가 산다. 차디찬 치열한 경쟁의 시장 속 고무대야에서 크기를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욕심을 지닌 미꾸라지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려고 몸부림친다. 이런 슬픔에서 장자는 희망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 물고기가 큰 새(붕)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올라 힘차게 날개짓하여 남쪽 깊은 바다로 간다. 남쪽은 따뜻한 곳이다. 차디찬 북쪽과는 전혀 다른 희망의 장소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고무대야 속에서 엄청나게 큰 욕심의 미꾸라지가 욕심의 무게를 버리고 붕으로 변하여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 희망의 세계로 가는 것이 붕정만리이다.
붕정만리는 공간의 이동이다. 세상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의 흐름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을 의미한다. 저절로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온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세월)이 지나면 해결되는 따스함이다. 하지만 추운 북쪽바다에서 스스로 깨치고 나와 남쪽으로 가는 것은 적극적인 행동에 따른 공간 이동으로 자의적 해결 방법이다. 공간이동은 몸이 이동하는 것과 마음이 이동하는 것이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이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미꾸라지가 한번 생각이 바뀌면 그 순간에 용이 되고 붕이된다. 오늘은 겸허한 마음으로 붕정만리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