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센다이를 방문하였다. 지도교수님의 희수(喜壽, 77세) 기념 강연회가 있었다. 십여 년 만에 듣는 교수님의 강연이었지만 전문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강의였다. 더불어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도 궁금한 점에 대하여 생각하고 의문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을 보여주는 강의였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쉬지 말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자기발전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셨다.
유학시절 자주 가던 일본 라멘집을 가니 20년 전에 먹던 맛이나, 가구나 변한 것이 없다. 다만 일하는 종업원들이 젊어졌다. 일본 친구 부모님께 인사가니 반갑게 맞아주시며 최근 한일관계가 나빠진 것에 걱정을 많이 하셨다. 멀리 바닷가 주변의 소나무들로 전망이 멋진 곳이었는데 5년 전 지진과 쓰나미로 쓸려가서 그저 아무것도 없는 평평함만이 변화를 느끼게 하였다. 일본의 변화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밖으로는 항상 조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로공사도 사람이 가장 다니지 않는 시간을 골라서 심야에 행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센다이는 3년을 살던 곳이기에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지난 7년 사이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대민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로 바뀌었다. 역에서 차표를 파는 사람들이 젊어졌고 필요이상으로 업무를 세분화한 듯한 느낌이다. 또 모르던 건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결국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동화를 늦추고 토목공사를 증가시킨 느낌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필자의 생각을 계속 잡고 있던 일이 있었다. 입국 시 동경을 거쳐서 고속열차 신칸센으로 센다이를 갔다. 고속철도 하야부사가 시속 320km로 서울-대구 거리를 1시간에 주파하였다. 이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동안 한국을 분쟁으로 몰고 가던 영남권신공항 사건이 실체가 없는 ‘찻잔속의 태풍’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몇 년 안에 서울과 부산을 1시간 30분만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 KTX 해무의 430㎞ 시험운전이 끝났다. 그러면 과연 신공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공항이 지어지기도 전에 쓸모가 없어질 수도 있었다. 위정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고 싶은 것일까? 알면서도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우롱한 것일까? 몰랐다고 하면 무능한 이들에게 국가를 맡겼으니 큰일이고, 알면서 했다면 국익이 배제된 개인적 권력만 있기 때문에 더욱 큰일이다.
조선시대에는 영호남간의 지역갈등이 없었다. 그때는 어디 사람이냐는 지역을 묻지 않고 혈통인 성씨가 무엇이고 어느 파인지를 물었다. 즉 혈통이 중요하였지 어디 사는 지는 중요한 여건이 아니었다. 결혼을 할 때에도 성씨와 파를 물었고 지역은 묻지 않았다. 이승만 시대까지도 영호남에서 타 지역 국회의원이 배출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던 것을 군사정권이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천 년 전 삼국시대의 신라와 백제 전쟁을 현대로 끌고 와서 감정을 이입시키는 작업을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한마디로 지역감정은 실체가 없는 조작된 감정이다. 지금부터 15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고 당시에 3국이었기 때문에 한쪽나라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어느 두 나라가 치열한 싸움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한 3국이 비등하게 전쟁을 하였으니 영호남 간의 갈등이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인 나라에서 1500년을 유지되어 내려오는 것을 불가능하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들은 민족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이 마치 영국과 같은 느낌으로 실체가 없는 감정을 만든 것이고 그것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서 심리학에 나오는 집단 무의식처럼 세뇌를 시켰다. 신공항사건이 영남을 분열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다.
5년 전 쓰나미의 악몽을 조용히 극복하는 사람들, 77세에도 전문가로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수님, 청년 고용을 위하여 자동화를 지연하려는 노력, 한일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고 염려하시는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들 ‘찻잔속의 태풍’과 비교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야 찻잔 속에 향기로운 커피가 담겨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