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는 수없이 많은 나라와 개인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반복됨을 보여준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마치 ‘사기’ 한권을 읽는 느낌이다. 게다가 현재 진행형으로, 내가 역사의 무대 속에 살고 있다는 현장감마저 든다. 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촛불시위 참가 가족이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참가했다는 말은 많은 사람이 현실적 역사의식을 지닌 것을 시사한다.
21세기에 벌어진 순실사태가 기이하게 생각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군주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대통령제는 과거 군주제의 힘을 셋으로 분리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대통령이 비슷한 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차이로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지니는 권력의 크기가 다르다. 이름과 역할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완전히 다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각각의 주들이 합쳐지면서 통합된 나라의 대표를 정하며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며 대통령제를 선택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대통령이 왕을 대치한 이미지로 잔존해 있었다. 그런 증거로 얼마 전까지 백성이라는 표현들이 사용됐던 것이다. 백성이란 왕의 국민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과거에 박정희가 서거했을 당시 마치 왕이 죽었을 때처럼 슬퍼하고 통곡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후 30년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은 민주화를 겪으며 국민들 의식 속에서 왕정에 대한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귀족 지배층이었던 정치인들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향수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국민들이 과거 향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금 대통령을 만든 것이라는 어느 외국 매체의 지적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융이 말한 바처럼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는 오랜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온 왕정에 대한 익숙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거나 그 측근이 되면 그런 왕정 시대의 모드로 서서히 변화되어 착각된 의식 속에서 다른 시대감으로 살고 있었다고 의심이 된다.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순실사태를 심리적으로 분석을 해보면서 무의식 속에 잔존했던 왕정에 대한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해석된다. 경제학자였던 순진한 교수가 어느 날 기업체를 겁박하는 범법자로 변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이 100만이 시위를 해도 전혀 변함없는 답변을 내고, 무너진 집권당에서 무책임하게 끝까지 버티는 당대표, ‘내가 누군데’라며 눈에서 기자에게 레이저를 쏘는 前민정수석,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공무원 전체에게 공문을 발송한 행자부 등등의 모습은 그들 내면 무의식 속에서 왕정으로 회귀되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된다. 그래서 그들은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못하고 당황하기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화정 의식을 지닌 국민과 무의식 속에 왕정 의식을 지닌 정치인들 간에서 나타나는 괴리이다.
이번 사태를 필자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본다.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정치인들의 뇌리 속에서 왕정에 대한 그림자가 많이 지워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만년을 왕정으로 지낸 우리 역사에서 불과 50년 만에 완전히 무의식까지 바뀌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간단히 바뀌지도 않고 수많은 사건과 사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실이’는 역사적으로 보면 한번은 겪고 지나가야 하는 사건이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마천은 2100년 전에 통치형태를 1등급: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정치(순리의 정치), 2등급: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정치(백성을 잘살게 하는 정치), 3등급:백성들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정치(훈계형 정치), 4등급:백성을 일률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정치(위압정치),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라고 하였다. 사마천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우리 내면 속에 세종대왕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