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겹도록 많이 듣는 단어 중에 ‘농단’이 있다. 그런데 정작 농단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이는 드물다. 사실 농단은 고사 성어에 나오는 단어이다. 4자 성어로는 ‘농단세금’이라고 한다. 농단(壟斷)은 맹자의 공송추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농단의 한자적 의미는 주변을 모두 살필 수 있는 깎은 듯 높은 언덕이다. 그럼 왜 높은 언덕이 나쁜 의미로 변한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맹자가 백성을 구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제나라를 떠나려고 하자 임금이 붙잡으면서 후한 대접을 제시하였다. 이에 맹자가 말한 것이 농단이다.
옛날에는 시장상인들에게 세금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악하고 교활한 자가 나타나서 시장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단을 쌓고 시장의 형편을 낱낱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알아낸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장사를 해서 결국 시장의 이익이 모두 이 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에 관청에서 이 얄미운 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였다. 장사꾼에게 세금이 부과된 이유를 임금에게 빗대어 설명하고 맹자는 제나라를 떠났다. 이때 높이 쌓은 단을 농단이라고 하였다. 농단에 의해 세금이 탄생하게 되어 농단세금이란 4자 성어도 나왔다.
현대 경제학적 논리로 말하면 나쁜 짓이 아니다. 빠른 정보력에 의한 이윤 극대화는 현대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다. 하지만 맹자의 생각은 한 두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보다는 모든 이에게 유익할 수 있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생긴 생각의 차이다. 맹자가 악이라고 생각한 농단의 개념은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당연히 행하여야 하는 자본주의 논리이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한 시대나 세대의 선악 개념도 바뀐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프레임 속에 갇히고 세상과 차단되기 쉽다. 심지어는 선악에 대한 판단도 바뀌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요즘 자주 목격되는 공익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며 자기 합리화하는 공직자들의 모습도 변하지 못한 채 과거에 형성된 자신의 선악적 프레임 속에 갇힌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요리사 아내의 오류’를 떠올린다. 어떤 남자가 장가를 가서 보니 부인이 너무 요리를 못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갔다. 이번에는 요리를 잘하는 부인에게 새로 장가를 가려고 장안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여자를 만났다. 남자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생각에 요리사와 결혼을 하고 만두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 요리사 신부는 “저는 만두를 만들 줄 모릅니다. 저의 임무는 주방에서 오로지 파를 써는 일입니다. 파는 세상에서 제일 잘 썰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남편은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것이 ‘요리사 아내의 오류’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이런 ‘요리사 아내의 오류’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비슷한 면과 다른 면이 있다. 비슷한 면은 Form & function 관계이다. 농단에서 높은 언덕은 Form이고 맹자 이야기는 Function이다. 요리사 아내는 Form이고, 파만 썰고 만두를 못 만드는 것은 Function이다. 다른 면은 농단은 100% 전체적 Function이고, 요리사 아내는 부분적인 면이었거나 불량적인 Function인 점이다. Function만을 생각하는 요리사 아내는 억울할 수 있다. 설마 남편이 Form을 원할 줄 몰랐을 수 있다. 반대로 Form만 본 남편도 억울할 수 있다. 설마 요리사가 만두를 못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남편은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다시 새로 장가를 가거나 아니면 아내요리를 포기하고 아내가 요리점에서 자신이 잘하는 파를 썰고 사온 음식점 만두를 먹는 것이다.
기존의 흐름을 깬 새로운 방식의 장사 방법인 농단은 결국 세금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농단과 요리사 아내의 오류에 빠진 우리도 이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을 긍정적으로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