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학(정신 신체의학)이란 말이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있다. 영어로는 ‘psychosomatic medicine’이며, 신체의 병 치료에 심리학의 원리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Psychosomatic dentistry는 오래되었다. The Journal of the American Society of Psychosomatic Dentistry and Medicine이 1983년에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somatics로 바뀌었다. 아마도 처음에 치과의사와 의사가 모여 학회를 시작하였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통합의 필요성으로 이름을 바꾼 듯하다. 그 즈음 1986년 일본에서는 치과심신의학회가 설립되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버블을 경험하면서 나타난 장기 불황인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에 진입하기 바로 직전이다. 물론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90년의 동서독 통일, 1991년 소련 해체, 1993년 EU통합이라는 큰 사건들이 같이 맞물리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일본 장기 불황과 버블이 시작된 시점인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의한 엔고현상이 학회 출발 시기와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의 급변과 장기 불황은 결국 일본국민들의 심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의 증가이다. 그때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던 시기였다. 장기 불황은 심신적인 문제가 포함된 환자를 유발시킬 가능성을 높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벌써 몇 년째 세계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심신의학의 필요성이 증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조금은 늦은 감마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IMF가 발생한 1997년이나 미국 리먼사태가 발생한 2008년경에 한국 치과계에도 심신의학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필요하였다고 생각된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마음이 황폐해지고 결국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게 된다. 이런 경우 최초의 원인인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신체에 나타난 질환의 증상은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의학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임상가들은 종종 경험한다. 새로 만들어준 크라운의 교합면을 다 갈았는데도 높다고 이야기 하는 환자, 충치나 치주염이 전혀 없는데도 이가 아프다는 환자, 임플란트에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컴플레인을 하는 환자 등등 조금만이라도 환자를 진료한 치과의사라면 한두 번쯤은 경험한 일이다. 이런 경우 문제되는 신체적 증상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치과의사가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환자의 심신문제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것은 환자의 경제적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치과치료가 행해지면서 환자는 더욱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련의 진행과정을 환자가 인식하지 못한 채로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만을 주소로 치과를 찾아오고 치과의사는 아무런 정보나 고려 없이 증상 치료에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마음에서 신체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는 것인데 치과의사가 발견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일본에서는 치과대학병원에 심료치과진료센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에 치과심신의학과가 개선된 곳도 상당수가 있다. 심지어 치과의사 개인이 심신의료치과의원을 개원한 곳도 있다. 이런 현상이 사회가 발달해나가는 한 과정이라면 우리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치과대학병원에 심신의학을 전담하는 진료센터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만큼의 수요가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또 그런 센터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사회 요구도와 치과의사 요구도가 증가함을 이야기한다. 만약 이런 센터가 없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일반치과의사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로 인하여 일반 치과의사는 해결되지 않는 환자의 컴플레인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치과 외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모습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치과계에도 심신의학에 대한 개념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