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40분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아버지 집에 오니 아직 5시도 안되었다. 안방에 TV도 켜져 있고 화장실에 불이 켜진 것이 아버지께서 화장실에 계신 모양이다. 오늘은 깨우는 실랑이가 없어서 좋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침 운동을 나오니, 내가 좋아하는 비가 내렸다. 평소 나의 로망이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인데, 오늘 새벽에 소원이 이뤄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가 와서인지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아버지와 둘이서 황제산책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사람이 없는 덕에 ‘천년을 빌려준다면’과 ‘안동역에서’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올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라면 팔각정을 한 바퀴 돌고는 대나무 밭 안에 있는 평상에서 15분간 쉬면서 간식을 드셔야 하는데, 비도 오고 평상이 젖어서 바로 돌아오게 되니 아버지가 힘들다고 투덜거리셨다. 사우나에 도착하니 아버지 몸은 온통 땀이셨다. 아버지가 온탕에 계시는 동안에 시간을 내어 팔굽혀펴기 80개와 맨손 스쿼트를 200개 하는데 오늘 따라 온탕에서 나올 생각도 없으신 모양이다. 평소에는 일찍 나오셨는데 비온 탓인지 나오시지 않는 덕분에 3년 만에 처음으로 스쿼트 400개를 했다. 허벅지가 터질 정도였다. 고마운 아버지가 아들에게 운동을 빡시게(?) 시키셨다. 사우나 후에 간식을 너무 잘 드신다. 음료수 킬러이시다. 나에게 신이 시련도 주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지혜도 주신다. 모든 것이 감사한 아침이다.”
지방에 개원하신 지인 원장님이 카톡에 올린 비오는 어느 날 아침 풍경 글이다. 선생님은 치매 걸리신 아버지를 모시고 매일 새벽에 운동과 목욕을 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이 시련도 주지만 이길 수 있는 지혜도 주신다”는 글귀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필자 정도의 50대 중반이 넘으면 주변에 부모님이 치매이신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많은 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또 대개 이때쯤은 자녀들이 입시준비를 하는 때와 겹치게 된다. 그러면 집에서 같이 모시기 더욱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면 요즘 같은 핵가족시대에서는 한 가정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사회는 처음 장수사회로 진입하며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로 당황하였다. 그나마 요즘은 전문요양병원이 많아졌으나 초창기에 경험하신 분들은 많은 어려움과 마음고생을 하였다. 후배 중에 집에서 끝까지 치매인 어머니를 병간호 한 경우가 있었다. 후배가족들이 힘든 일들을 겪어내는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을 지녔던 일이 있어 이 글이 더욱 고마웠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각자가 살아온 세월과 방식 그리고 추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에게는 자식이지만 자식들에게는 또 부모인 이중적 신분이다. 이중적 역할이 요구된다. 그 속에서 역할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자식에게 폐를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의 문제가 자식에게 알려지면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핵가족시대인 지금 일반 가정들이 감수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수사회에 진입한 지 20여년이 되면서 사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가족들이 겪어야 할 마음고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로병사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것이 가까운 가족에게 발생하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에서 겪는 일들은 오롯이 생체기와 같은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위 글의 원장님으로부터 받은 카톡 글이 필자의 하루를 건강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종종 힘든 하루나 짜증날 만한 일을 만나면 이 글을 읽어본다. 그 때마다 위로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뀐다. 이 글을 보내주신 원장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아버님 또한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