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은 보통사람들은 섬강(蟾江)을 잘 모른다. ‘두꺼비강’으로 불리는 섬강이 지나는 원주시 간현리 절벽에 토정 이지함의 ‘병암(屛岩)’이란 글씨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앉은 바위의 모습이 두꺼비를 닮아 ‘두꺼비강’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섬강은 한강의 지류이며 길이는 73㎞이다.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을 가르는 고개인 양구두미재로 유명한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해 상류는 ‘계천’이라 부르며, 횡성댐이 있는 대관대리를 지나 횡성읍으로 오면서 금계천과 합류해 국가하천인 ‘섬강’으로 그 이름이 바뀐다. 횡성을 지난 섬강은 원주를 지나 남류하여 간현 관광지와 문막 취병소를 지나 여주와 경계 지점인 부론면 흥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지난 10일 우리 바이콜릭스팀은 예전에 이화령-여주 구간인 남한강 여정 중 날이 어두워 가지 못했던 여주-남한강대교 구간을 달리기로 했다. 코스 길이가 짧아 허균, 허난설헌의 스승인 손곡(蓀谷) 이달의 자취를 따라 부론면 일대와 섬강을 돌아 여주로 오는 길을 택했다. 수많은 고개와 역사의 자취를 더듬고 강천섬을 들려 여주로 돌아오는 80㎞의 여정이다.
집에서 새벽 6시 30분에 나와 전철 분당선을 타고 이매역에 내리니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7명의 대원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서 내려 준비운동 후 오전 9시 40분에 여주역을 출발했다. 하늘은 잿빛으로 흐리고, 안개가 여주 일대를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22~23%의 시원한 날씨, 라이딩하기엔 최적이다. 나는 3개월간 웨이트 콘트롤로 6kg이 줄어 한결 가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코스의 난이도와 비포장도로를 감안하여 타고온 풀샥(앞뒤에 샥옵서버가 2개인 자전거)캐논테일은 기막힌 승차감으로 바람처럼 나아간다. 여주 근린공원을 지난다. 이곳에는 여주8경의 하나이며 여주 지명의 유례가 되는 마암이 자리하고 있다. 여주의 ‘려(驪)’는 ‘털빛이 검은 말’이라는 뜻이며 말 ‘마(馬)’자와 음(音)을 나타내는 ‘려(麗)’가 합쳐진 글자이다. 마암절벽 정상에 단정하게 앉아있는 영월루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는 남한강과 여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곧 남한강변 자전거 길로 들어선다. 안개가 자욱한 강변에는 모든 것이 농무 속에 묻혀 있어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강천보가 가까워오고 우리는 강천보 위를 달린다.
길게만 느껴지던 강천보를 순식간에 넘어 계단길에 조성된 정자에서 카보로딩을 하고 강북 강변으로 나선다. 싱싱한 초록의 잔디로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위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교를 지나면, 달리는 우리를 따라오듯 강 가운데 강천섬이 “친구”하며 함께 달린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강천섬은 여의도와 같이 남한강의 퇴적 할동으로 모래가 쌓여 생긴 자연의 섬이다. 강천교를 넘어 강천섬유원지로 들어서면 드넓은 잔디광장에 야영하는 가족들의 텐트가 옹기종기 자리하고, 섬 중앙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조성돼 있었다. 이 길을 따라 다시 강천교를 넘어 강천리로 접어들면 이번 라이딩의 첫 고개인 경사 10%, 길이 2㎞의 창넘이고개(여시고개)가 버티고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고난의 길! 이런 고개가 없다면 자전거 여행은 무의미하다. 있는 힘을 다해 창넘이고개를 넘으니 강원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섬강교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만난 외국인 자전거라이더가 파이팅을 외친다. 그들은 충주까지 간단다.
다시 강변으로 나와 남으로 숲속강변길을 달린다. 좁은 뚝길을 올라서니 섬강이 시작되는 남한강과의 합수 지점인 흥원창(興元倉)이 있다. 흥원창은 고려, 조선시대에 설치한 조창(물류창고)으로 강원지방의 세곡을 수납 보관했다고 한다. 이 세곡을 한강 수로를 이용해 개경, 한양으로 운송했다. 흥원창의 위치는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로 추정되며 이 일대를 ‘은섬포’라고도 한다. 정약용이 충주의 처가를 다녀오던 길에 이곳의 경치가 하도 기가 막혀 ‘은섬포(銀蟾浦)’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강변 뚝길 옆에는 흥원창 쉼터가 있는데 여기에 1796년 정수영이 그린 ‘한임강명승도권’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 속의 흥원창이라 표시된 집들과 창고 군영이 자세히 묘사돼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남한강대교! 우리는 예전 충주에서 시작한 남한강 여정의 중간 지점인 남한강대교까지 왔었다. 다시 내륙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린다.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부론면은 식견이 높은 시인 묵객들이 정치를 논의하고 정담을 나누었던 곳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막 방향으로 달리면 붉은 고개가 나와 또 한 번 진땀을 빼고 손곡저수지로 오르는 지루한 경사 8%, 길이 1㎞의 손곡리고개를 다시 넘어 손곡저수지에 도달한다. 손곡리의 명칭은 손곡 이달이 살았던 마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손곡은 서출이었으나 당나라 시인을 이어받은 조선 3대 삼당시인이었다. 재능이 뛰어났지만 신분의 한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를 벗 삼아 설움을 달래며 전국을 방랑했다고 한다.
또 손곡은 허난설헌의 오빠인 허봉의 친구이자 허균과 난설헌의 스승으로 난설헌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북으로 문막 방향으로 달리면 또 하나의 고개 부문재(3㎞, 10%)를 만나 기진맥진하며 고개를 넘는다. 곧 견훤이 왕건에게 패한 견훤로를 따라 경동대학을 지나면 섬강 자전거길로 들어선다. 섬강을 보러 이 먼 길을 돌아왔던가! 녹초가 울창하게 자란 강변은 마치 태고의 초원을 방불케 했다. 물이 적어 온통 잡초가 강을 메우고 있었다.
섬강길 따라 자연을 즐기면 한적한 강변 정자가 우리를 맞는다. 섬강을 상징하는 하얀 두꺼비 석상이 풀밭에 서있다. 두꺼비강인 섬강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상징이었다. 해 지는 섬강변을 따라 우리 대원은 끝없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 9시간의 80㎞ 라이딩을 끝낸다.
여주역의 불빛 속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