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폭행, 위기의 동네치과 ‘긴급진단’
남성 치의에 대한 폭언·폭력 수위 여성 치의보다 높아
욕설 등 언어적 폭력 압도적…신체적 위협, 물리적 폭력도 20%
의료계의 폭언·폭력이 어느 정도 만연해 있다는 것은 여러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왔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일 줄은 몰랐다. 치과신문이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치과 내의 폭언·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6%가 폭언·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성별을 불문하고 남녀 모두가 폭언·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이에 대한 대처는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치과 내 폭언·폭력 실태, 그 이면을 낱낱이 고발한다. <편집자 주>
진료실 폭력, 의료인 스트레스·방어진료 양산
설문조사 응답자 79% 가중처벌 등 법규 강화 촉구
본지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치과 내에서 발생하는 폭언·폭력 실태 및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코자 ‘치과 내 폭언·폭력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치과신문 뉴스레터 구독자 2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메일과 SMS를 통해 실시됐다.먼저 설문 응답자의 인구사회학적 통계를 살펴보면, 총 응답자 305명 중 남성이 63.6%(194명), 여성이 36.4%(111명)를 차지했다. 직군별로는 치과의사가 전체의 80.3%(245명), 스탭이 19.7%(60명)를 기록했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의원급이 89.5%(273명)로 압도적인 수치를 나타냈다(표 1).
응답자의 83%가 폭언·폭력 경험
치과 내에서의 폭언·폭력 경험을 물은 첫 번째 질문에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표 2).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05명 중 폭언·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총 255명으로 전체의 83.6%를 차지했다. 가히 놀라운 만한 수준이라 하겠다. 하지만 폭언·폭력이라는 설문내용의 특성상, 이를 경험한 의료인 및 스탭이 더욱 적극성을 가지고 설문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비율을 전체 치과계로 확대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치과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언·폭력의 실태 및 현황, 그리고 이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으로 사료된다.
언어폭력 심각 수준, 하지만 소극적 대처로 일관
폭언·폭력의 유형을 묻는 설문에서는 ‘언어적 폭력’이 압도적이었다. 폭언·폭력 경험자 255명 중 201명(78.8%)이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욕설, 소리지름, 반말 등의 언어적 폭력에 시달린다고 답했다(표 3). 이어 때리려는 자세를 취하거나 병원 물건을 발로 차는 등의 ‘신체적 위협’과 때리거나 멱살을 잡는 등의 ‘신체적 폭력’도 각각 11.4%(29명)와 7.1%(18명)를 차지하며 물리적인 위협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에 따른 폭언·폭력유형을 살펴본 결과,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언어적 폭력’을 가장 많이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4). 폭언·폭력을 경험한 158명의 남성 중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남성은 121명으로 전체의 76.5%를, 여성은 전체 97명 중 80명에 이르는 82.5%가 언어적 폭력을 겅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흥미로운 부분은 남성이 경험한 폭언·폭력 수위가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신체적 위협의 경우 남성은 전체의 13.3%가, 신체적 폭력은 전체의 10.2%로 조사돼, 여성의 8.3%와 2.1%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언·폭력을 경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까? 상당수의 응답자들은 적극적인 대처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대처법의 순위를 살펴보면,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가 전체의 47.1%(120명)를 차지해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표 5). 이어 △참거나 자리를 피한다(21.6%, 55명) △경찰에 신고한다(16.1%, 41명) △강하게 맞대응한다(12.5%, 32명) 순이었다.
적극적인 대처를 ‘경찰에 신고한다’와 ‘강하게 맞대응한다’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대처를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와 ‘참거나 자리를 피한다’로 구분할 경우 적극적인 대처는 전체의 28.6%(73명), 소극적 대처는 68.7%(175명)를 차지해 적극적 대처가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언·폭력 발생 시 성별에 따른 대처법을 분석해본 결과, 남성의 경우에는 맞대응하는 비율이, 그리고 여성은 회피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남성은 ‘참거나 자리를 피한다’라는 응답이 전체의 14.5%에 불과한 반면, 여성은 33%에 이르렀다(표 6). 반대로 ‘강하게 맞대응한다’라는 응답에서는 남성이 17.2%로 여성의 5.1% 보다 높았다. 폭언·폭력 발생 시 아무래도 남성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폭언·폭력 유형에 따른 대처법에서는 폭언·폭력 수위에 따른 대처법의 변화양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폭언·폭력 수위가 높아질수록 이에 대한 대처 수위 또한 함께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언어적 폭력’에서는 9.9%에 그쳤던 ‘경찰신고’가 ‘신체적 위협’과 ‘신체적 폭력’으로 수위가 높아질수록 그 비율도 37.9%와 50%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 7). 이외에도 개체수가 극히 적긴 하지만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3명의 응답자 모두 ‘참거나 자리를 피한다’라는 답변을 한 것으로 확인돼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폭언·폭력, 결국 방어진료 등 정신적 스트레스로 귀결
폭언·폭력 경험 후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면, 상당수의 폭언·폭력 경험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으로 방어진료를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폭언·폭력 등의 마찰을 예방하기 위한 방어진료가 46.8%(180명)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표 8). 또한 대면 시 두려움이 생겼다는 응답이 33.8%(130명)로 뒤를 이었으며, 이전 및 폐업을 고려하거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과적 문제가 생겼다는 응답도 각각 9.4%(36명)와 3.4%(13명)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폭언·폭력 경험 후 재발방지 조치를 묻는 설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는 답변이 절반에 가까운 49%(125명)를 차지했다(표 9). 폭언·폭력 시 대처법을 물은 앞선 설문조사에서도 ‘참거나 자리를 피한다’와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등의 소극적인 대처가 우위를 차지한 것과 비슷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어”라는 자조 섞인 생각과 가해자가 보복을 가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등 복합적인 사안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CCTV와 비상연락망 구축 등 치과 내 보안을 강화한다는 응답과 폭언·폭력 예방·대응 매뉴얼 교육이 각각 33.7%(86명)와 8.6%(22명)를 차지해 가장 일반적인 재발방지 대책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사법기관으로의 고소·고발 및 민·형사상 소송의 적극적인 재발방지 노력은 5.9%(15명)에 불과했다.
언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매우 커
한편 폭언·폭력의 경험 유무를 떠나 설문 참여자 전체를 대상으로 폭언·폭력의 잠재적 위험 정도를 파악해본 결과 상당수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진료실 내 폭력 사건에 대한 위기감 정도를 5점 척도로 확인해본 결과,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라는 응답이 각각 48.9%(149명)와 38.4%(117명)를 차지, 과반 수 이상의 의료인이 언제든지 폭언·폭력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표출했다(표 10). 이에 반해 ‘그렇지 않다’와 ‘매우 그렇지 않다’는 각각 9명과 1명에 불과했다(보통이다 9.5%, 29명).
이외에도 예상되는 폭언·폭력의 발생원인을 묻는 설문에서는 단연 진료와 관련된 원인들이 상위에 랭크됐다. ‘치료결과 및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36.6%(199명)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고, △의료인 및 스탭의 행동·의사소통에 대한 불만(20.8%, 113명) △질환 악화 등에 기인한 화풀이(16.8%, 91명) 등도 적지 않았다. 또 하나의 발생원인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환자 개인의 문제였다. 설문조사 결과 ‘환자 및 보호자의 개인적(정신적) 문제’가 23.4%(127명)로 2위를 기록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표 11).
폭언·폭력이 발생했을 때 고민상담 등 의지할 곳을 묻는 설문에서는 ‘동료 선후배 및 진료스탭’이 전체의 67.9%(207명)를 차지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표 12). 의료라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자신의 폭언·폭력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단순한 조언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 뒤로는 △가족(12.1%, 37명) △치협 등 소속단체(8.9%, 27명)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는다(8.9%, 27명) △심리상담센터 등 전문상담기관(2.3%, 7명) 순이었다.
마지막으로 의료기관 내 폭언·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응답자들은 관련 법규의 강화를 꼽았다. 전체 응답자의 79%에 해당하는 241명이 ‘관련 법규 개정(가해자 가중 처벌, 의료인 보호조치 강화 등)’을 선택,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할 때야 비로소 의료기관 내의 폭언·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표 13).
실제로 최근 들어 의료기관 내의 폭언·폭력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의료인을 상대로 한 폭언·폭력이 발생할 경우 가중처벌을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되는 등 사회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등 의료계 곳곳에서는 의료인을 상대로 한 폭언·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법률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법률 강화와 함께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폭언·폭력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대처방안을 의료인 스스로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