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받은 보험회사 등의 시도 때도 없는 환자 진료기록부 사본요청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는 지난 3일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9호에 대한 명확한 법령해석을 내놨다.
의료법 제21조 제3항은 환자의 동의 없이 진료기록을 제공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항을 나열하고 있다. 해당 법령에서는 기본적으로 열람 및 사본제공이 모두 가능하다고 돼 있으나, 같은 조항의 제9호에는 진료기록에 대한 ‘열람’만 가능하다고 돼 있어, 법령해석에 모호한 점이 있었다.
실제로 해당법령을 살펴보면 의료법 제21조 제3항은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그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교부하는 등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다만,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명시하며, 환자의 동의 없이도 기록을 열람하거나 그 사본을 교부할 수 있는 사항으로 총 16가지 항목을 꼽고 있다.
그 중 제9호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12조 제2항 및 제14조에 따라 의료기관으로부터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받은 보험회사 등이 그 의료기관에 대하여 관계 진료기록의 열람을 청구한 경우’라며, 열람과 사본 교부를 모두 명시한 제21조 제3항과 달리 ‘열람을 청구한 경우’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의료기관의 직원인 민원인은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9호에 ‘열람을 청구한 경우’로만 규정돼 있다는 이유로, 보험사의 사본 교부요청을 거부해 왔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이와 같은 경우에도 사본을 교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내리자, 법제처에 정확한 법령해석을 요청하게 됐다.
법제처는 “의료인 등은 사본 교부의 방식으로 환자에 관한 기록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당 조항의 해석을 명확히 하며 “법령에서 일정한 원칙에 관한 규정을 정하고 해당 원칙에 대한 예외규정을 두는 경우 이 예외규정을 해석할 때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문언의 의미를 확대해 해석해서는 안 되고 보다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법 제21조 제2항에서는 의료인 등이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같은 조 제3항 각 호 외의 본문에서는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면서 같은 항 제8호, 제9호 등에서는 환자에 관한 기록의 내용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경우를 근거 법률과 함께 ‘제출’, ‘열람’, ‘열람 또는 사본 교부’ 등과 같은 확인의 방식까지 특정해 규정하고 있다”며 “환자에 관한 기록의 내용을 확인하려면 문언상 같은 항 각 호에 규정된 확인의 방식으로만 요청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법제처는 “의료법 제21조 제3항 각 호 외의 본문에서는 환자에 관한 기록의 내용 확인이 요청된 경우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교부하는 등’이라고 확인의 방식을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같은 항 각 호에 규정된 확인 방식의 여러 유형을 포괄해 기술하는 규정일 뿐이므로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9호와 같이 확인 방식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음에도 이와 다른 방식으로 확인 요청을 한 경우 의료인 등이 이에 따라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행 의료법 제21조 제3항과 같이 환자에 관한 기록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각 호로 구분해 규정한 의료법의 취지는 같은 법에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환자기록의 열람 및 사본 교부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해 환자에 관한 정보를 엄격히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기록을 열람하는 방식은 열람의 시간 및 장소를 벗어난 활용이 곤란한 반면 사본을 교부받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 정보의 취득과 활용 측면에서 볼 때 양 방식은 차이가 크므로 의료법 제21조 제3항 각 호에 규정된 확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의 확인을 허용하는 것은 입법취지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치과의사회 정제오 법제이사는 “적지 않은 회원들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와 관련, 보험사로부터 환자의 진료기록부 사본 제공을 요청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갈수록 행정업무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법제처의 명확한 법령해석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행정업무를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