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제33조 8항, 즉 1인1개소법 위반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를 환수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4조 2항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이번 판결 역시 기존과 마찬가지로 의료기관 개설과정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의료인이 진료를 했다면 요양급여비를 환수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한 금지조항을 명시한 의료법 제33조 8항에 이어 제4조 2항까지 동일한 맥락의 확정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기관 개설과정의 위법성과 관련 없이 의료인이 진료했다면 요양급여비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기조는 사실상 하나의 판례로 굳어졌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신용불량 등의 이유로 인해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의료인 A씨가 다른 의료인인 B씨와 C씨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운영하다 환수처분을 받은 상고심에서 파기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3년 6월 13일까지 B씨의 명의로 서울에 한방병원을 개설·운영하고, 그 이후인 2013년 6월 14일부터는 C씨의 명의로 한방병원을 개설한 후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러던 지난 2014년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씨가 B씨와 C씨의 명의를 빌려 한방병원을 개설·운영, 의료법 제4조 2항을 위반했다며 명의 개설자인 B씨와 C씨에게 각각 2억3,825만원과 4억169만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 환수처분을 내렸다.
이에 B씨와 C씨는 “우리는 A씨와 동업을 해 한방병원을 공동으로 개설·운영했을 뿐 명의를 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법 제4조 2항은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면허로 의료기관을 여러 장소에 개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설령 우리가 명의를 대여했더라도 A씨는 하나의 한방병원만을 개설·운영했기에 의료법 제4조 2항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또한 “의료법 제4조 2항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1개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까지 금지한다고 해석하는 건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해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기각하고 건보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행정부는 1심에서 판결한 바와 같이 B씨와 C씨는 A씨에게 고용된 후 자신들의 명의로 한방병원을 개설해 줬기에 명의를 대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법 제4조 2항은 B씨와 C씨의 주장과 달리 의료인이 수 개의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방지해 개설 및 운영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다른 의료인 명의로 개설되는 의료기관을 금지함으로써 달성하려는 공익이 이로 인해 침해되는 의료인의 불이익보다 작다고 볼 수 없으므로,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 “명의대여 했어도 환수의 근거될 수 없어”
하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비록 명의를 대여해 운영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요양급여비는 의료인이 진료를 한 행위에 대한 비용인 만큼 이를 환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증거들을 볼 때 A씨가 이 병원의 개설자금을 전부 부담하고, 인사와 재무관리를 전담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B씨와 C씨의 명의로 된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고 인정된다”면서도 “이러한 사실이 의료인이 건강보험 가입자 등 환자를 치료하고 받은 요양급여비를 환수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심이 의료법 제4조 2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한방병원이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병원이 수령한 요양급여비가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1항이 말하는 부당이득 환수의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은 관련 법리를 오해해 판결한 것”이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에 환송했다. 즉 의료법 제4조 2항을 위반한 것은 분명히 인정되지만, 의료인이 직접 환자를 진료하고 비용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결국 최근 연이어 결정된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의료법을 위반해 설립되거나 운영된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의료인이 실제로 진료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환수할 수 없다는 판례가 사실상 굳어지면서 향후 요양급여비 환수를 둘러싼 각종 소송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