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또 다시 크게 두 흐름의 세력으로 갈린 듯 하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개개인이 가치를 정하는 기준을 가치관이라 한다. 가치 기준으로 각각 자신들이 경험과 생각, 사상, 철학, 종교 등이 모두 합쳐져서 가치를 평가하는 가치관이 형성된다. 그런 가치에는 상대적 가치와 절대적 가치가 있다. 극단적으로 장발장처럼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친 경우에는 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상대적 가치이고, 도둑질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절대적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법은 절대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상대가치의 여유를 주기 위해 집행유예를 택한다.
동양철학에서 오행적 관점에서 보면 관(官) 중심에서 재(財) 중심사회로의 이동이다. 사람들이 삶에서 추구하는 것은 부와 귀이다. 부귀이다. 부를 재물(財)이라 하고, 귀를 관직(官) 혹은 권력이라 한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관의 시대였다. 관직이 모든 것을 장악하던 시절이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근·현대 시대는 부(財)의 중요성이 커지는 혼재된 사회였고, 지금 사회는 이미 완전한 부(財)의 시대로 변하였다. 다만 사회 변화보다 개인 생각과 사상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개개인 가치 기준이 관에서 재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 지금 상태라 할 수 있다. 성리학적으로 보면 이(理)와 기(氣)의 차이이다. 理는 이상적 규범과 도리, 윤리이지만 정적이고 맑다. 반면 氣는 동적이고 적극적이고 빠르고 활력이 있지만 탁하다. 지금 시대는 理의 시대에서 氣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IT와 AI,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임명할 때 명백하게 죄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임명한다고 하였다. 사회가 재(財)의 시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관(官)의 시대에서는 죄가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서 밝혀진 다음에 임명하겠다는 생각과 사고를 한다. 그런 루머에 휩싸인 것 자체도 잘못이기 때문이다. 청렴에서 淸(맑음)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으로 매우 삼가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에서 財의 기능은 두 가지가 있다. 재생관(財生官)이 있고, 재극인(財剋印)이 있다. 상생에서 재생관은 재물을 관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수업료(財)를 내고 열심히 공부하여 관직(官)에 나가는 것과 같이 쓰임이 있는 곳에 집중하면 결과(官)를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재극인은 재물(財)이 인성을 망가트리는 것으로 재물의 쓰임이 잘못되면 성격이 나빠지거나 도덕성이 무너져서 나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관(官)의 시대는 관인상생으로 인성의 도움을 받으니 삶에서 비록 가난하여도 여유가 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모두가 가난하니 비교하고 시기할 대상도 없었다. 재의 시대는 삶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졌지만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여유를 상실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생각과 삶의 형태의 변화일 뿐이다. 관의 시대에서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끼리 싸움을 하면 선생(官)님이 훈육하고 학부모(財)들이 사과하고 끝났다. 하지만 재의 시대에서는 관이 무너져서 초등학생 싸움에서 경찰서에 가서 잘잘못을 가리고도 안 되면 재판까지 간다.
상대가치가 옳은지 절대가치가 옳은지는 동전의 앞과 뒤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얻고 잃는 것이 다를 뿐이다. 컴퓨터를 살 때 애플을 살지 MS를 살지의 차이이다. 호환성과 대중성을 생각하면 MS이고 전문성을 생각하면 애플이다. 이미 세상은 재(財)의 시대이다. 염치와 체면보다 결과와 이익의 시대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이 무시된다. 미국에서 트럼프와 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도, 일본에서 아베 같은 군국주의자가 총리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가 혼란이 오는 것도 관의 시대가 유독 길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의 걱정은 착하게 산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것이 관의 시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재의 시대인 것이다. 물론 마음은 별개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