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중앙정보부장은 폭우를 맞으며 건물을 기어 올라가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밀실에 접근해서 ‘도청’한다. 자신을 음해하고 못마땅해 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으며, 박 대통령을 (우발적이 아닌 필연적으로) 암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심리변화를 묘사한다. 물론 극적효과를 위한 허구이지 실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치과계에선 현 협회장이 당한 진료장면 ‘도촬’사건이 발생했다. 환자로 위장 잠입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에 대한 고소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선의로 진료했지만, 겸직금지 규정을 위배한 것은 실수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고 협회장이 연임 출마를 선포하기 직전이라 전형적인 네거티브 공작으로 보인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치판을 답습한 행태가 수치스럽다. 배후설을 의심받는 모 후보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만일 그렇다면 치과계를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모 후보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지, 당선되면 협회장 ‘비상근제도’로 돌아가겠다고 공약했다. ‘상근제’는 원래 대외적으로 협회장을 예우하고 협회 일에만 전념하라고 채택된 제도다. 당시 치협을 제외한 다수 의약계 단체들이 상근제를 실시했다. 임원진이 제안해서 총회에서 표결로 통과된 중요사안이다. 이제까지 여러 협회장들이 상근제로 잘해왔는데 다시 졸속으로 바꾸겠다는 건 무리다. 치과계 내부결속을 위해 비상근제를 하겠다고 하지만 그게 죄는 아니다. 분열은 그간 네트워크 치과 척결 문제, 과잉경쟁과 광고, 전문의 문제, 재선거 등으로 인한 고소고발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비상근제 장점도 있다. 당연히 경비가 절약된다. 협회장 업무가 상시로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시간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다. 협회장의 진료 자체가 로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협회장도 의료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진료 자체가 격에 맞지도 않거니와 균형감각에서 멀어질 수 있다. 협회장이란 자리는 회원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다. 때론 대승적 국민 구강건강 차원에서 회원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할 사안도 생길 것이다.
네 후보의 공통공약은 단연 보조인력 해결과 경영환경 개선이다. 당연히 민생과제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고 중요한 화두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선거 때마다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속 시원히 해결된 적도 없다. 협회가 애썼지만 그만큼 난제이고 한계가 있다. 치과간호조무사, 덴탈 어시스턴트, 치과행정사, 실현만 되면 모두 훌륭한 제도다. 그러나 직역 간의 이해 상충으로 산 넘어 산일 것이다. 보험청구 월 2,000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장밋빛 공약은 반갑기까지 하고 모든 회원의 꿈이다. 그러나 의·치·약·한 네 단체의 각축전에서 치협만 2배로 될지는 의문이다. 포퓰리즘적 공약은 회원들도 자제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코로나 비상시국으로 심각단계다. 의협은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 타이창시는 민영치과 진료를 전면 금지했다. 대구시는 고립됐다. 자진 휴진하는 동료도 있다. 비말감염에 제일 위험한 치의들은 난감한 처지다. 의약분업 파동 때 치협은 의협과 동조해서 시위를 했으며, 이에 구강정책과가 폐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직을 걸고 큰 결단을 해야 하는 자리가 협회장이다. 협회는 코로나 시국과 관련, 의료인 단체와 공조해야 한다. 국민 건강과 회원의 안녕 사이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 후보자들의 건투를 빈다.
*논단은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