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국도를 따라 홍천방향으로 가다가 봉상리에서 342번 지방도를 타면 양동면이 나온다. 양동역을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 길 계정리를 향해 북으로 달리면 대월마을이 나오고, 그곳에 제1대월교가 있다. 다리 왼쪽에 금왕산 산악자전거코스 입구가 있다.
지리적으로 금왕산은 양평군 양동면에 위치하고 금왕리와 계정리에 펄쳐있는 산이다. 금왕산MTB 코스는 양평군의 7개 산악자전거 코스 중 하나로, 총 52.5㎞에 달한다. 제1대월교(금왕산 MTB코스입구)에서 산길로 13㎞ 지점에 하늘숲 추모원이 있고, 추모원 입구가 스무나리고개 정상이다. 이 도로를 건너면 18㎞에 달하는 산길임도가 나오는데, 그 너머가 횡성군과 양평군의 도계이며, 군계인 거실치고개다. 여기서 6㎞ 정도 다운힐 라이딩을 하면 양동면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생소한 이름의 금왕산을 자전거로 가기로 하였다. 지원자 한명과 양평에서 손꼽히는 유명코스인 이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아침 7시, 밴에 두대의 자전거를 싣고 응봉역을 출발한다. 광주-원주 고속도로로 가다 동양평 IC에서 양동면으로 향했다. 양평은 부추가 특산물인 것 같다. 양평부추를 광고하는 큰 입간판이 우리를 맞는다.
양동면은 지평리와 더불어 의병의 본고장이다. 1893년 우리나라 최초로 의병이 봉기한 곳이다. 양동면 석곡리에서 선봉장 이백선, 군사 안승구, 의병장 이춘영이 을미의병을 조직하고, 1907년 해체된 을미의병을 대신하여 정미의병이 조직되었다.
원주지역 의병대장인 이인영에 의해 전국의병이 집결, 1만명의 13도 창의군을 창설하여 양동에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정미의병은 고종퇴위와 군대해산으로 갈 곳을 잃은 군인은 물론, 양반과 평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의병이었다. 향후 독립군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금왕산(488m) MTB코스는 3개다. 제1코스는 대월교에서 하늘숲추모원까지, 제2코스는 하늘숲 추모원(스무나리고개 정상)에서 거실치고개까지, 제3코스는 거실치고개에서 양동면사무소까지로 구성돼 있다. 시간상 제1, 2코스를 주행하기로 하였다. 이 두 코스는 사실상 금왕산 코스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산길로 접어들면 항상 걱정되는 것이 ‘오르막이 얼마나 길까’하는 생각이다. 오르막이 길수록 체력소모와 육체적 고통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는 마을길을 1.6㎞ 가량 가자 본격적인 산악코스를 알리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약초꾼들과 산불방지를 위해 일정기간 입산이 금지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도 250~300m의 산허리를 돌아드는 임도는 마치 구절양장같이 수없이 꼬불꼬불 돌아든다.
산길이 그렇듯이 길에는 잡초와 야생화가 피어 있고, 바퀴가 헛돌 정도로 돌과 자갈이 많은 구간도 있었다. 숲이 우거진 깊은 그늘 속에서 우리들의 숨소리만이 산의 적막을 깰 뿐이었다. 배낭에 넣어온 설탕물로 소모된 탄수화물을 보충한다(카보로딩). 숨이 턱에 차면, 눈앞도 희미해지고 머리는 어지럽다. 다람쥐 한마리가 우리를 빤히 보다가 숲으로 사라진다.
본격적인 자연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1㎞쯤 가다가 다시 주저앉기를 수없이 하며 스무나리고개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런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정상정복의 보람과 내 체력에 대한 기쁨일 것이다. 몇 번을 쉬었던가, 가지고온 간식(양갱, 초콜릿, 고구마)을 수없이 먹으며 오른다. 울창한 숲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반은 지나왔나?’ 하는데 뻐꾸기가 울어댄다. 산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머리까지 맑게 해주는데, 한줄기 햇빛이 내리는 곳에는 흰쑥부쟁이, 노란금불초 등 예쁜 야생화가 우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사람하나 없는 산길, 오직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우리의 숨소리뿐, 적막 속에서 고독을 즐긴다. 워낙 숲이 우거져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가끔 보이는 것은 수목사이로 보이는 좁디좁은 하늘뿐…
대적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마음은 평심서기(平心舒氣)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은 벗 삼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저 자연이 주는 신비에 즐거워할 뿐이다. 7㎞ 가량 다다르니 모처럼 내리막이다. 하지만 내리막 뒤엔 반드시 오르막이 있기 마련. 그래서 산을 달릴 때는 그 순간을 즐기자고 마음 먹는다.
달려 내려가는 길은 바람까지 불어 시원한 맥주한잔의 기분이랄까? 그리고 또 오르막! 죽을 힘을 다해 오른 오르막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었다. 추모원에 다온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3㎞면 추모원이 있단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추모원 길에 들어서니 길옆에는 각종 야생화가 눈을 홀리는데, 나비 떼는 꽃을 찾아 이리저리 날고, 각종 산새가 합창을 한다.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제1코스가 끝난다는 기쁨과 아스팔트의 편안함에 마치 이불에 누워있는 듯 포근하기만 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7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처남의 수목장이 있는 곳이다. 가서 인사나 해야겠다. 우리는 수목장 옆에서 기도를 드렸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일찍 가다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고 추모원 쉼터로 달렸다.
밴기사가 건네준 콜라 한 병을 게눈 감추듯 입속에 틀어넣고 벤치에 누워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이제 제2코스에 도전할 차례다. 추모원을 나오니 그곳이 스무나리고개였다. 옛날 이곳은 산적, 산짐승이 출몰하여 나리 20명이 모여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스무나리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길 건너 제2코스 팻말이 있었다. 제2코스는 처음부터 15%의 오르막이다. 짧은 오르막이라 단숨에 올랐지만 이 길의 성격을 몰라 불안하였다. 그러나 제2코스는 주로 내리막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몸이 경직되어 힘들었지만, 제2코스에서는 몸이 풀린 상태라 순식간에 1㎞를 내달렸다. 가끔씩 설탕물로 카보로딩을 한 덕에 희미한 정신도 맑아졌다. 오르막 내리막을 수십 번, 갑자기 도화원이 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에 웬 복숭아밭인가?
흰 종이로 감싼 복숭아가 마치 흰 꽃처럼 아름답다. 산새가 울어대는 울창한 숲, 길가에는 흰나비들이 노닐고, 손바닥만한 하늘이 정상이 가까이 왔음을 말해준다. 친구도 신나는지 휘파람을 분다. 제2코스 17㎞ 지점에 다다르니 치솟은 시멘트 빨래판 길! 20%에 가까운 살인적인 경사.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감)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언덕을 올랐다. 여기가 제2코스 정상이었다. 이제부터 금왕산은 우리에게 비단 같은 내리막길을 선사해주었다. 멀리 밴기사가 손짓을 한다. 한달음에 거실치고개로 내려섰다. 우리는 힘든 산악 라이딩 31㎞를 해냈다. 밴기사가 놀라워 한마디 한다. 70세가 넘으신 분들이 이 험한 산을 어떻게 넘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