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Ⅳ

2025.05.29 12:24:56 제1115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712)

지난주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40대 남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한 학생 가족으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인 휴대전화로 하루 10통 이상의 민원을 받았다. 2023년 7월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이후로도 9월에 전북 군산 초교, 경기도 용인 고교, 대전 초교, 10월에 서울 양천구 초교 등에서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선생님들이 세상을 등졌다.

 

지난 10년간 자료에 의하면 2015년 11명, 2016년 4명, 2017년 9명, 2018년 19명, 2019년 17명, 2021년 21명, 2022년 20명, 2023년 25명, 2024년은 1월부터 8월까지 총 19명이었다.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교사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전체 교사 중 51.2%가 초등학교 교사였고, 고등학교 교사가 27.4%, 중학교 교사가 21.4%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2019년 이후로 대략 연간 20여명의 선생님들이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숫자가 더 있다. 자살 성공률이 10%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약 200여명 이상이 미수에 그쳤을 것이다. 연구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16%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4.5%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 적이 있었다. 이는 전국 교원 5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자살을 생각해본 경우가 8만명이고 계획을 세운 경우가 2만명 정도가 된다. 또 우울증상 경험 교사는 63.2%로 일반 성인의 우울 유병률 8~10%보다 훨씬 높았다. 그중 유치원 교사가 49.7%고 초등학교 교사가 42.7%로 우울 증상 비율이 높았으며, 학부모 상담 횟수가 많을수록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도 증가했다.

 

이 자료를 종합하면 교사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난 1년간 한 번이라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치과의사도 17%가 된다. 전문가 직업군으로 넓게 생각해본다면, 의사 혹은 변호사 등과 같은 전문가의 연간 자살률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정도로 추측된다. 그러나 비록 다른 전문 직업군의 자살률과 비슷한 정도라 해도 교사 자살률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 교육은 한 국가의 미래에 대한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관포지교의 관중(관자)이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학교의 근간인 선생님이 무너지면 학교 자체가 무너진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과 선진국 대열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만들어 낸 결과가 지금 우리나라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의 그림자는커녕 대놓고 무시하고 폭행하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방과 후에 전화를 걸어서 교실에 둔 스마트폰을 가져다 달라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이런 비상식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관자의 말을 빌리면 백년 뒤에는 나라가 없어진다. 실제로 나라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198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인의 5배 수준이었던 아르헨티나가 40년만에 중진국 이하로 몰락했다. 잘못된 길로 가면 당연히 잘못된 결과에 도달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무너지면 좋은 교육을 받은 학생이 사라지고 결국 그 나라의 미래도 사라진다.

 

지금 젊은 세대는 한탕주의에 몰입되어있다. 무리하게 영끌해 집을 사고 코인에 투자를 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을 미련하다고 비웃는 풍토다. 거기에 편승한 포퓰리즘 정책은 신생아 대출, 생애최초 대출, 디딤돌 대출이라는 명목으로 젊은이들을 빚의 구렁텅이로 내몰면서 부동산 띄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어느 누구하나 집은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40대 이후에 사는 것이라고 충고해주는 이가 없는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다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이 유일한 자원인 나라에서 교육이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진 것이 아닌가. 지금 현실은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가는 것을 따뜻하다고 여긴다. 관자 시절엔 망하는데 백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40년이면 충분하다.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을 것이 두렵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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