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순번제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총 13개의 주로 나뉘며, 정부가 임명하는 주지사가 있는 4개의 주를 제외한 9개 주의 술탄들이 5년씩 돌아가며 국왕이 되는 시스템이다.
각 주는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지역적 특성과 종교적 색채가 다르다. 경제적 중심지이자 현대화가 진행된 주도 있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이슬람 가치가 매우 강한 주도 있으며,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할 만큼 강력한 자치권을 지닌 주도 있다. 대부분의 주는 장자 세습으로 술탄이 승계되지만, 어떤 주는 후보자들 중에 왕가의 인물 중에 선거로 술탄을 선출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판이한 경제적 위상과 종교 성향을 가진 술탄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5년마다 평화롭게 국왕직을 승계하는 것이 매우 이채롭다. 술탄이라는 지위가 이미 왕의 자리만큼 좋아서일까? 그래도 국왕의 자리는 또 다를 텐데 말이다. 사실 술탄의 세계는 일개 소시민인 필자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역이겠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체계에서 여러 정치적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겠다.
일단 모든 술탄이 순번제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며 충돌하는 것보다 ‘국가의 안정’이라는 가치가 우선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레이시아도 사람 사는 곳인데 순수한 이상주의자들만 있지는 않을 테고, 아마도 현실의 정치영역에서는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균형점을 잡기 위해 모르긴 몰라도 시스템적으로, 혹은 장막의 뒷편에서 여러 가지 조율이 이뤄지고 있을 것인데, 그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일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질서 속에서 권력이 평화롭게 이동하며 순번제로 돌아가는 역사가 쌓이게 되면, 그 역사의 무게감 자체로 국가적 통합과 안정의 강력한 상징이자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국왕 제도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권력의 사유화 방지’다. 5년 뒤면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은, 국왕이 독단적으로 권력에 집중하게 될 동기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 한시적인 임기는 국왕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조율하는 역할에 머물게 만든다.
말레이시아 사례를 보고 있자면, 거대한 국가에 비하면 그저 하나의 직업 이익단체에 불과한 규모의 조직에서 3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가진 리더를 뽑는 치과계의 선거가 최근 너무 과열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개원가의 현실이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영웅’이나 ‘메시아’가 필요한 상태인 걸까. 우리 치과의사들이 당면한 문제들이 과연 어느 초인의 힘으로 해결될 일인가.
사실 말레이시아의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왕이 바뀌는 와중에도 제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과연 우리 협회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는 시스템’인가. 누가 회장이 되어도 흔들림 없이 회원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선거를 몇 주 앞둔 시점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누가 당선되든 간에 진심으로 축하하고 치과계에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이번 회장단이 치과계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고, 3년간 잠시 봉사하고, 다음 사람이 계승할 수 있도록 훌륭한 ‘어떤 질서’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