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북중미 월드컵의 서막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다시금 뜨거운 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대표팀의 전력을 두고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금, 축구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캡틴’ 손흥민 선수의 발끝으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손흥민 선수가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터뜨린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을 거머쥐었을 때, 우리는 그 이름의 주인인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as)와 대한민국 사이에 흐르는 깊고도 끈끈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확인하며 묘한 감동을 느낀 바 있다.
1950년대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던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s)’ 헝가리의 중심에는 늘 푸스카스가 있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던 순간은 전설적인 전성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군 소속 팀인 혼베드에서 활약하며 ‘질주하는 소령(the galloping major)’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비교적 단신임에도 전설적인 왼발 킥력을 자랑했다. 당시 헝가리 대표팀은 “어떤 팀을 만나도 경기 시작 10분 내에 2골을 넣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무시무시한 속전속결의 대명사였다. 실제로 그들은 A매치 31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당대 최고의 ‘무적함대’로 군림했다.
이러한 전설을 기리기 위해 2009년 제정된 푸스카스상은 대회나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매년 최고의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9년)를 시작으로 네이마르(2011년), 모하메드 살라(2018년) 등 수상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 권위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 처음 발을 내딛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운명의 첫 상대가 바로 이 푸스카스가 이끄는 세계 최강 헝가리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60시간이 넘는 고단한 비행 끝에 경기 직전 간신히 도착했던 우리 선수들에게 헝가리는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었다. 이 경기에서 푸스카스는 예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며 9-0 승리를 주도했다. 비록 점수 차는 컸지만, 푸스카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빈 한국 선수들의 투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70여 년 전 우리에게 패배의 쓴잔을 안겼던 전설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 국가대표 주장이 받았던 최고의 영예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역사의 아이러니다.
푸스카스의 조국 헝가리와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속에서 강대국의 지배라는 아픈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헝가리가 소련의 영향권 아래서 고통받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식민 지배와 이념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 피어난 연대 의식은 놀랍도록 구체적인 흔적을 남겼는데, 김원봉의 의열단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준비했던 폭탄 300개의 배후에는 헝가리인 기술자 ‘마자르’가 있었고, 그의 조력 덕분에 우리 독립운동은 더욱 강력한 화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첫 상대인 체코와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1차 대전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베리아를 횡단하던 체코 망명 군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리 독립군에게 근대식 무기를 판매했는데, 이 무기들은 훗날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자산이 됐다.
70여 년 전 푸스카스에게 호되게 당했던 한국 축구는 이제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받은 ‘월드 클래스’ 주장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우리는 과거 독립군에게 총을 건네주었던 체코를 상대로 첫 경기를 치른다. 비록 지금 우리 대표팀이 마주한 상황이 녹록지 않고 손흥민 선수의 어깨 또한 무겁겠지만, 우리는 늘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 반전을 만들어온 저력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그 불굴의 의지가 이번 6월, 북미의 그라운드 위에서 다시 한번 찬란하게 재현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