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22년간 서울 한 병원에 자해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4,452명이었다. 그중 24세 이하가 1,445명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1983년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전 국민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규 방송이 중단되고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라는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한 이웅평 소령이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서울 시내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기 위해 한강 다리로 몰려든 차량과 인파로 인해 서울 교통은 마비되었고, 그날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넘어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전화통화도 모두 불통이었다. 서울시민은 처음 고립을 경험했다.
이 극적인 사건은 정치·군사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나비효과가 지금도 강남에 이어지고 있다.
그날 이후 강북의 부자들이 강남으로 이사 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진짜 부자들은 모두 강북에 살았다. 권력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종로, 성북동, 한남동 등이 그들의 터전이었다. 당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강남은 그저 흙먼지 날리는 거대한 공사판이자, 정부가 억지로 이주를 권장하던 외곽의 임시 거처지에 불과했다. 강북 사람에게 강남은 심리적으로 먼 변두리였다. 하지만 전쟁 공포는 강북 자산가의 생존 본능을 깨웠다. “만약 진짜 전쟁이 난다면, 피난을 갈 수 있는 한강 이남에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이 심리적 공포와 방어기제는 순식간에 강북의 자본을 강남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다.
강남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자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반대로 강북 지역은 상대적인 낙후와 소외를 겪으며 ‘강남북 격차’라는 고착화된 사회 문제를 낳았다. 게다가 이 나비효과의 진짜 비극은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지역 간 불균형에만 있지 않다. 공간의 변화는 그 공간에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과 정신마저 바꾸어 놓았다.
정신과전문의 김정일 원장은 저서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를 통해 강남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기괴한 심리적 왜곡을 날카롭게 고발한 바 있다. 그는 오로지 돈만을 좇고, 인간적인 신뢰를 상실한 채 아파트 평수와 통장 잔고로 서로를 검열하는 강남의 독특한 대중 심리를 정신병동에 비유했다. 북한의 위협이라는 생존의 공포를 피해 강남으로 이주한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극심한 생존경쟁 체제를 구축했다. 공포를 피하기 위해 자본이 모였으나, 이제는 그 자본을 지키고 더 증식해야 한다는 집착이 새로운 불안장애가 된 것이다.
강남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인간관계는 철저히 도구화되었다. 이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내가 극복하고 이겨야 할 비교의 대상이자 잠재적 경쟁자일 뿐이다. 학벌, 직업, 자산 규모라는 엄격한 잣대로 서로를 등급 매기는 사회에서 깊은 인간적 유대감이나 신뢰가 자라날 리 만무하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곳에서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행복과 정신적 안정은 ‘타인과의 깊은 연결감’과 ‘안전기지(Secure Base)’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돈만을 향해 질주하는 강남 문화에는 이 안전기지가 없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고층 빌딩과 명품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안증, 우울증, 그리고 물질적 중독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 기형적인 심리 구조를 갖게 되었다. 외형적 풍요 속에서 영혼은 갈수록 빈곤해지는 풍요 속의 빈곤으로 마음이 병들었고 결국 마약이 퍼지는 결과까지 도달했다.
40년 전 이웅평 소령은 자신의 자유를 위한 귀순이 이런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만약 그가 귀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강남은 없었을 것인가. 단지 시간의 지연만 있었을까.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된 사회라면 어디든 강남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인간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더불어 살란 말이다. 그래야 응급실에 환자가 줄어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