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나온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나 술자가 치과보철물을 10년 넘게 편안히 쓰고 있으면 잘 된 것이라고 만족스러워한다. 무릇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여러 의미를 담아내나 보다.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어느 날이었다. 당시 일흔 중반이 넘으셨던 지인의 모친이 임플란트는 무서워 절대 하기싫다 하시어 수개월에 걸친 상하악 가철성보철치료를 마무리할 때 쯤이었다. “김 원장! 이거 나 죽을 때까지 또 손 안 봐도 되게 잘 해준 거지?”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했다. 그간 조금 친해진 사이라, 눈을 가늘게 뜨며 “어머니, 몇 년쯤 더 사실건데요?”라고 물었더니 필자의 안경에 침방울이 튀도록 웃어젖히시고 나선, “딱 10년만 더 살고 갈거야..”라며 일어나시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지급한, 그리고 지급할 상여금에 대해 각종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공유되었다. 수억원이 넘는 상여금이 ‘부족해서 부당하다’는 측과 ‘과다해서 부당’하다는 측의 이견과 갈등 중에, 상여금이 없는 기업과 심지어 급여가 체불된 기업이나 문을 닫는 기업의 사주와 사원들에겐 이 소란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견으로 시끄러운 상황에 대해 돈벼락 맞은 기업의 사측과 해당 노조는 물론 정부와 언론의 무감각, 무책임, 무대책의 태도에 대한 아쉽고 섭섭한 느낌은 필자만의 것은 아니었을 듯하다.
SOC반도체디자인과 소위 ‘반도체임베디드시스템’의 최고 권위자인 모 공대학장의 설명에 따르면, 반도체기술의 선두유지는 R&D와 생산장비에 대한 천문학적 수준의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예컨대 작은 나라 대만의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TSMC의 눈에 띄는 선전(善戰)은 어마어마한 수익의 대부분을 재투자하는 경영방침에 노사(勞使) 간의 지속적인 합의가 큰 힘으로 작용해왔다고 한다. 향후 AI의 패권은 소프트웨어프로그래밍 역량, 반도체디자인 및 생산 신기술과 장비들을 누가 선점하고 끌고 가느냐(물론 데이터센터와 전기공급망, 법률환경 등 주변 여건도 관련되지만)에 달려있다고 역설하며, 이번에 얻어진 큰 수익을 조금은 더 덜어내어 우리나라가 반도체기술의 선도국으로 확실한 기반을 다져가는 미래에 쓰일 수 있도록 재투자됐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이들이 있어 기업이 큰 이윤을 창출했는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내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익의 일부를 희생하라는 제안도 일견 공정치 못하다. 예전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빨갱이 보자기를 뒤집어쓸 우려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이처럼 ‘뜨거운 감자’가 된 담론들을 의연하게 이슈화하고, 진지한 태도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더해 공동체 전반의 여론을 수렴하며 필요한 결정들을 신속히 내려 결행하는 성숙한 언론과 유능한 정부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박용호 위원장(서울지부 ‘100년史’ 편찬위원장)님이 본지 특별기고를 통해 소개한 한 모기업 대표의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훨씬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교시(敎示)한 바와 같이, 이 시대가 경제적인 우위가 정의(正義)이고 무력이 승자(勝者)인 시절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럴수록 그 트렌드를 경계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그러한 배금(拜金)의 철학과 문화를 강조해 넘겨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모두(冒頭)에 이야기한 지인의 모친은 이제 아흔이 넘으셨고, 10여년 전 상악보철물을 그대로 사용하신다. 하악은 일부 변화가 생겨 최근 임플란트 치료를 진행하던 중, 필자가 농담을 건넸다. “어머니, 예전에 이 틀니 딱 10년만 쓴다고 하셨는데, 15년 넘게 쓰고 계시니 5년치 치료비 더 주세요.” 했더니, 눈 가늘게 뜨고 말없이 웃으셨다.
반도체 엔지니어들보다 덜 윤택해질지 어떨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우리 치과의사들은 우리의 정성으로 오래도록 잘 기능하는 보철물과 환자의 행복에 ‘추가진료비 내역서’같은 상여금 요구를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우리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우리는 치과의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