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사들고 나오곤 한다.
얼마 전, 언제 맡아도 기분 좋은 종이 냄새 가득한 서점 한켠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법의학의 대가인 서울대 의대 유성호 교수의 저서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책장을 넘기며 치과의사로서 마주하는 나의 일상 역시 법의학자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저자는 법의학자를 ‘죽은 자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읽어내어 삶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각 장기의 상태를 통해 고인의 삶을 유추하고, 남은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법의학자가 훼손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 앞에서 그가 누구였으며 어떻게 살다 갔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면, 치과의사는 매일 진료실에서 치아와 임상 기록을 보며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고민하고 그 상처를 보듬고자 노력한다.
비록 살아있는 인간을 대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치과의사 역시 환자의 구강이라는 수많은 내용을 담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것이다. 유니트체어의 라이트를 켜고 환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스크린에 띄워진 파노라마 사진 위로 그(녀)가 걸어온 세월의 흔적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치아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견뎌온 세월의 무게와 생활 습관, 심지어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도 고스란히 입안에 새겨두기 때문이다. 대구치 교합면의 극심한 교모와 깊이 파인 치경부 마모, 치근을 따라 미세하게 간 금(crack)들은 환자가 숨 가쁜 일상과 스트레스 속에서 얼마나 힘겹게 이를 악물며 버텨왔는지를 묵묵히 대변한다. 특정 부위에 만성적으로 진행된 치주염은 스스로 돌볼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가정을 지켜온 고단한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어떤 이의 구강은 빈곤과 소외로 방치되어 있고, 또 어떤 이의 구강은 철저한 관리와 경제적 여유로 반짝인다. 이처럼 우리가 임상에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경조직의 파괴나 염증이 아니라, 환자가 온몸으로 통과해 온 삶 그 자체다.
그렇기에 치과의사의 소명은 단순히 핸드피스를 들고 치아를 깎아내거나 인공 재료로 빈 공간을 채우는 기계적 수리에 머무를 수 없다. 우리는 환자가 남긴 삶의 흔적을 존중하고, 일그러진 여정을 바로잡아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강한 인생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매일 무심코 차트에 써 내려가는 치식과 방사선 사진 한 장이, 훗날 한 사람의 존엄성과 신원을 증명할 마지막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필자 앞에 앉은 환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묻는다. ‘나는 오늘 이 구강 속에서 어떤 삶의 이야기를 읽을 것이며, 그의 앞날을 응원하는 어떤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가.’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치아 역시 살아온 삶을 속이지 않는다.
유성호 교수가 책의 말미에 남긴 문장을, 필자의 진심을 담아 동료 선후배 치과의사들과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한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가능한 한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이 작은 기록이 당신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