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치아를 들여다보는 치과의사지만, 결국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진료실은 치아만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왔고, 나는 그들의 치아뿐 아니라 삶의 한 장면도 함께 마주하곤 했다. 막 한국에 도착해 서툰 한국어로 잇몸이 아프다고 울부짖던 외국인 청년도 있었고, 진료를 마칠 때마다 직접 구운 빵을 종이봉투에 담아 건네며 “드시면서 하세요”라고 웃어주시던 할머니도 계셨다. 매일 수십 명의 환자를 마주하는 게 일상이지만, 어떤 환자는 어쩐지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오래 기억에 남는 환자가 한 명 있다. 특히 진료가 유난히 고되고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늘 그분과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분을 만난 건 30살 때, 대학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지금처럼 진료에 능숙하지도, 마음의 여유가 많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진료 인력이 부족했던 탓에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틈틈이 논문을 읽고 세미나를 준비한 뒤 다시 진료실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좋은 치과의사가 되기보다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는 데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만약 그때의 내 사진을 꺼내 본다면, 웃고 있는 사진보다 어딘가에 쫓기듯 굳은 표정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한 젊은 환자가 있었다. 신경이 막혀서 대학병원으로 의뢰된 평범한 환자였다. 여느 때처럼 진료를 시작했고, 그럭저럭 치료를 마쳤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끝난 줄 알았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뒤였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시골의 한 치과에서 진료를 시작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문의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선생님께 다시 치료받고 싶어요.”
메일에는 지난 1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내가 대학병원을 떠난 뒤 병원 곳곳에 문의하며 연락처를 찾아다녔던 일, 내 소식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던 과정, 어렵게 메일 주소를 찾아 이렇게 용기를 내어 연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그 메일은 환자가 치과의사에게 보내는 진료 문의 메일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처럼 느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던 것.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에는 이렇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다. 사람들은 편지를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심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찾아온다. 평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고마움을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비로소 상대에게 전하게 되는 것.
돌이켜보면 그날 내게 도착한 메일도 그랬다. 치료를 예약하기 위한 연락이 아니었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런 치과의사는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선생님께 치료받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을 전하는 한 통의 편지였던 것.
그 메일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과의사인 우리는 흔히 치료의 완성도와 성공률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돌이켜보면 레지던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서툴렀고, 완벽한 진료를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환자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치료의 완성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불안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건네받은 한마디,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태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치료하려 애쓰던 손길. 어쩌면 환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치료 자체보다 그 치료를 받으며 느꼈던 안심과 신뢰, 마음의 교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메일은 내 메일함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진료가 유난히 힘든 날이면 가끔 다시 꺼내 읽는다. 그 짧은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아가고 싶은 치과의사’였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생각해 보면 치과의사에게 가장 큰 보람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수많은 치과와 치과의사 가운데 다시 나를 찾아와 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 그 믿음 하나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환자를 마주할 힘을 얻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