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동물이든 집단이 형성되면 룰이 생기고 권력이 탄생한다. 더불어 권력을 견제하는 힘도 같이 생겨서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권력이 강해지거나 견제의 힘이 상실되어 힘의 균형이 깨지면, 그 집단은 망하고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것이 자연계 이치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권력을 선출자에게 위임한다. 위임받은 권한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책임은 권력이 커질수록 더욱 무거워진다. 하지만 최근 많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이런 민주주의 원칙이 뭉개지고 아직도 후진국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독 지방의회 시의원의 성비위사건이 많다. 전형적인 권력 남용의 행태다. 대전, 안동, 부천, 의왕 시의원의 성추행사건과 청주시의원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있었다. 택시비를 안내고 지구대에서 주취난동을 벌인 춘천 여성시의원의 행태는 성별을 넘어 그들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에 만취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정윤기 사건에서 보인 경찰 조직의 제 식구 감싸기 모습과 ‘거제왕’으로 불린 지방 경찰 간부의 행태는 생각보다 깊숙이 썩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 행위와는 다른 문제다. 일부 사건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일부는 사소한 법질서는 고사하고 지역사회에서 조폭이나 왕처럼 군림하였다. 물론 모든 공직자나 모든 지역사회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심리적으로 권력은 인간의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킨다. 권력이 크고 오래 경험할수록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게 되고, 타인의 충고를 듣지 않으며, 규칙보다 자신이 우선이라는 착각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 ‘권력의 오만(Hubri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인간의 가장 큰 덕목을 ‘절제’라고 하였다. 권력이 커질수록 절제 역시 더욱 커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법 위에 있는 존재처럼 착각하며 민주주의는 서서히 병들기 시작한다. ‘
거제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그나마 투명해지면서 이제야 나타난 것뿐이다. 비록 중앙 권력은 아니지만 자신이 지배하는 작은 영역에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지방의원, 일부 고위 공무원, 지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 간에 오랜 기간 형성된 인맥과 조직 속에서 견제 세력을 제거하며 자신들의 왕궁을 형성한 것이다. 작게는 지역 경찰과 같은 조직에서 크게는 군 단위나 시 단위로 형성되었다.
단체적 영향력이 특정 집단 안에서 고착되어 권력 세습도 이루어진다. 학교 집단이면 학폭이 되고, 지역이면 거제왕이 된다. 민주주의적 사고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일하는 지방의원과 경찰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비리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건만, 역설적으로 중앙에서 보이지 않는 이점을 이용하여 최대한 권력을 향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역 공직자가 도덕성을 잃은 사회는 공정성을 기대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권력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거제왕’정도 되면 권력은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트로피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자들이 없어야 하지만 역사를 통해 그들은 늘 독버섯처럼 존재했으며 제거는 불가능하다. 양심과 도덕성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잘 선별하는 사회적 시스템과 독버섯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권력의 사유화는 주민이 만만하게 보일 때 발생한다. 권력은 더 강한 곳으로 붙는 특성이 있다. 결국 강력한 시민의 감시와 윤리·도덕적 척도가 필요하다. 선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와 강한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 주민들이 후보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정책만큼 중요하게 평가하고, 지방의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때 지방 권력은 비로소 주민을 두려워하게 된다. ‘거제왕’과 시의원의 지구대 난동이 사라질 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닌 선진국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