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서 10대 딸이 가출을 말리는 어머니에게 커피포트의 끓는 물을 부어 머리와 다리에 화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최근 존속 상해사건·사고가 많다. 청주에서는 술 마실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80대 노모를 폭행한 50대 아들이 실형을 받았다. 지방 아파트 복도에서 20대 아들에게 70대 어머니가 흉기로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또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가 밥과 약을 제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50대 아들에게 수개월 간 상습적으로 맞다가 결국 숨진 사건도 있었다. 부모 재산을 노리고 친모를 약물로 살해하거나,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부모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최근 4년째 해마다 50건 안팎이다. 더구나 가족사건이다 보니 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보고되지 않은 사건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느 시대든 나쁜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끓는 물을 부을 정도로 악하지는 않았다. 과거 먹을 것이 없었던 후진국 시절과 개도국 시절에도 패륜은 있었지만 이렇게 악하지는 않았다. 낳고 길러준 부모 머리에 끓는 물을 붓고 폭행을 저지르는 행위는 과거 일탈과 궤가 다르다. 선을 넘었다. 심리학적으로 이 같은 존속범죄의 급증은 충동조절 장애와 공감 능력의 극단적 마비에 의한다. 우리 사회의 학교 교육은 무너졌고 가족의 결속 또한 느슨해진 지 오래다. 물질적 과밀화와 과도한 디지털 매체 노출 속에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자란 세대는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공감성이 매우 부족하다. 극단적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욕구 충족(가출, 술값 등)을 방해하는 대상을 부모(가족)가 아닌 단순한 장애물로 인식하는 병리적 현상이 발현된 것이다.
사람은 즉각적인 만족에 익숙할수록 욕구가 지연되거나 거절당하는 순간을 견디는 마음 근육이 약해진다. 특히 그 좌절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대상일수록 폭발력이 커진다. 최근 고령화에 따른 문제성도 증가했다. 돌봄 피로로 치매나 만성질환을 앓는 부모를 홀로 떠맡은 자녀는 도움을 요청할 곳도, 쉴 틈도 없이 지속적으로 끝도 없이 에너지가 소진되어 간다. 사회가 나눠야 할 돌봄의 어려움이 한 사람에게 오래 쌓이면 애정은 원망으로 바뀌고 원망은 다시 폭력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 경우 사실상 둘 다 피해자다. 교육이 무너지고 도덕과 윤리의 기본적인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사회인식이 매우 빠르게 변하며 사회와 가정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로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사회적 부작용을 예견했지만, 엄마에게 끓는 물을 붓고 존속 살인처럼 선을 넘은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심각한 도덕적 아노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과거 사회를 유지하던 유교의 핵심 가치인 효를 논하기에는 이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 교육과 사회 메시지 속에서 다른 선진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인본주의적 가치와 타인과의 공감능력을 늘려야 한다. 부모 은혜에 대한 효라는 상하적 개념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가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요즘은 모두가 힘든 시대라서 마음에너지가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극복이나 인내보다는 공감이나 위로를 해줘야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자녀들이 부모의 희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의 희생이 아니라 희생하는 부모는 이미 무능한 부모다. 부모의 희생은 자신이 받을 권리를 조금 보상받는 것뿐이다. 부자 부모였다면 누릴 수 있는 권리였는데 가난한 부모여서 권리를 빼앗긴 것이라 생각한다. 무능한 부모는 가해자이고 자신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붓는 행위나 구타도 가능해진다.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고, 집을 요구하고, 돌봄을 요구하고, 자신의 감정까지 받아달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정당한 권리 주장인 요구가 된다. 선이 무너지고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이젠 효라는 위계적 전통관보다는 인본주의적 상호존중의 연대감이 가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일방적 희생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 간에도 상호존중과 공감이 우선 되어야 하는 시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