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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

[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미학; 인간관계의 스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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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헌 편집인

치과 개원가는 기술적 숙련도만큼이나 복잡한 ‘관계의 역학’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원장은 진료실 내에서는 정밀한 시술을 수행하는 임상가여야 하며, 데스크와 스탭 앞에서는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이자, 환자에게는 신뢰받는 치료자이자 상담가라는 다중적 캐릭터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성어가 바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다.

 

글자 그대로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하라”는 뜻의 불가근 불가원은 흔히 인간관계의 지혜를 논할 때 인용된다. 이는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勾踐)과 그의 두 충신,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오나라 왕 부차의 마구간지기 노릇을 하는 등 온갖 치욕을 겪었다. 구천은 처절하게 복수를 다짐하며 20년의 세월을 견딘 끝에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승리를 거두는데, 이때 그의 곁에서 모든 치욕을 함께 견디며 복수를 도운 인물들이 바로 명재상(名宰相) 범려와 문종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범려는 구천의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구천은 고난의 시기에는 신하들의 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일단 목적을 이루고 나면 권력을 나누기 싫어하는 인물임을 간파한 것이다.

 

범려는 함께 고생했던 동료 문종에게 구천이 고생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토사구팽형 리더임을 충고하고,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린 채 월나라를 떠났다. 하지만 문종은 범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범려의 예언대로 구천은 나라가 평정되자 공신들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결국 문종에게 칼을 내리며 자결을 명한다. 이것이 유명한 고사성어 ‘토사구팽(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의 유래다. 이 고사에서 범려가 보여준 스탠스가 바로 불가근 불가원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불가원(不可遠), 즉 군주가 어려울 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숨을 걸고 도와 신뢰를 쌓았고, 불가근(不可近), 즉 군주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는 사적인 친밀함에 취하지 않고 적절한 때에 거리를 두어 화를 면한 것이다.

 

치과 내에서 원장과 직원 사이의 거리는 업무적 효율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거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거리’의 경계에 놓여 있다. 너무 가까워지면, 공적인 지시가 사적인 감정에 휘말려 조직의 기강이 해이해지거나 감정 소모가 극심해진다.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소통의 단절로 인해 진료 협조에 오류가 생기고 직원의 애사심과 동기부여가 저하된다. 동양 철학에서의 ‘중용(中庸)’은 단순히 산술적인 중간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최적의 지점’을 찾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치과의사에게 이 최적의 지점이란 직원의 인격은 존중하되 업무적 엄격함은 유지하는 ‘따뜻한 단호함’의 상태를 의미한다.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최고의 성과를 내는 팀은 서로 지나치게 친밀한 팀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적정한 신뢰’가 형성된 팀이었다. 특히 의료서비스 업종에서의 리더십 연구에 따르면 리더의 ‘감정적 항상성(emotional homeostasis)’이 강조된다. 원장이 감정적으로 널뛰지 않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할 때, 직원들은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안정을 느끼며 이것이 결국 환자에게 전달되는 서비스의 질로 직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 항상성’과 ‘중용(中庸)’의 리더십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여 사적인 감정이 업무적 판단에 개입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지속적인 학습과 심신수양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타인과의 ‘적정 거리’를 설정하는 혜안을 제공할 수 있다. 치과 개원의 성공은 단순히 환자 수나 매출보다, 원장이 평온한 마음으로 직원들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속에서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화로운 생태계’를 이루는 데 있다.

 

힘든 순간에도 우리는 범려의 지혜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독자 여러분 모두 ‘불가근 불가원’의 지혜로 더욱 건강하고 조화로운 치과를 일궈 나가시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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