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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자산, 언제 어떻게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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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최명진의 자산배분 이야기 238

“이번에는 바쁘니까, 다음에 가자.”

 

가족과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쯤 하게 되는 말이다. 서로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항공권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비싸다. 성수기가 지나면 더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바쁜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이 생기고, 이번에는 아이의 일정이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간다. 여행 경비는 아꼈고 그동안 돈도 조금 더 모았지만 아이도 한 살 더 자랐다.

 

돈을 모으려면 당장 쓰고 싶은 마음을 조금 참아야 한다. 그렇게 남겨둔 돈을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자산도 조금씩 쌓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지금 쓰기보다 나중에 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여행도, 취미도, 조금 여유롭게 사는 일도 자산이 더 쌓인 뒤로 미뤄두게 된다.

 

그런데 올해 가지 않은 여행을 몇 년 뒤 더 좋은 여행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릴 때는 함께 여행을 다니는 일이 만만치 않다. 짐도 많고, 먹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부모는 쉬고 싶은데 아이는 수영장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다 보면 집에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크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 또 다른 사정이 생긴다. 학교와 학원 일정을 맞춰야 하고,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어디든 따라나서던 아이에게 함께 가자고 설득해야 할 수도 있다. 부모가 시간을 낼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아이도 그런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더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물놀이를 더 하자고 조르고, 작은 구경거리에도 신나 하는 모습은 그 시기에만 볼 수 있다. 여행을 미루는 사이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행복도 지나간다.

 

부모님과의 여행은 더 미루기 어렵다.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바쁜 일만 끝나면 좋은 곳에 모시고 가겠다고 생각한다. 전화로 말씀드리면 괜찮다고, 너희 바쁜 일부터 하라고 하신다. 당장 불편한 곳 없이 지내고 계시니 조금 늦어져도 될 것 같다. 다음에는 더 잘해드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나란히 걸으면 전보다 걸음이 느려지셨다는 게 느껴진다. 멀리 가자는 말에 집에서 쉬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 여행비를 부담할 형편은 나아졌지만, 이제는 이동 시간과 병원 일정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았을 텐데, 조금 더 일찍 다녀올 걸 싶어진다.

 

돈이 더 생기면 생활은 편해질 수 있다. 예전에는 부담스러웠던 일도 할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하지만 그때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할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리다 보면, 세월의 흔적 때문에 함께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눈앞의 일은 늘 구체적이다. 이번 달에 나갈 비용이 있고, 갚아야 할 대출이 있고, 내일 예약된 환자가 있다. 반면 가족과 보내고 싶은 시간은 당장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보면 다시 뒤로 밀린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결과는 그렇게 된다.

 

치과를 운영하다 보면 며칠 쉬는 데에도 계산이 복잡해진다. 진료를 하지 않아도 임대료와 인건비는 그대로 나간다. 쉬는 동안 줄어들 수입까지 생각하면 며칠 비우는 일이 꽤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평소처럼 진료하면 마음은 편하다. 하고 싶은 일은 은퇴한 다음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은퇴 후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며 미뤄왔던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생긴다고 다른 여건까지 함께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의 사정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진다. 은퇴 이후를 준비하되, 지금 가능한 일까지 모두 미뤄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자산을 모아온 사람일수록 돈을 쓰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소비를 줄이고 투자한 덕분에 지금의 자산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돈을 쓰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익숙하고, 계좌의 잔고가 늘어나면 안심이 된다. 반대로 돈을 쓰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 돈을 계속 투자해뒀다면 얼마나 더 늘어났을지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목표한 금액을 모아도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으고 나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자녀에게 들어갈 돈도 있고, 노후가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목표 금액은 다시 높아지고, 하고 싶었던 일은 또 뒤로 미뤄진다.

 

이럴 때는 목표 금액과 함께,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싶었는지도 돌아보면 좋겠다. 가족과 여행을 다니거나, 일을 조금 줄이거나, 새로운 취미를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막연히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리기보다, 그중 하나에 필요한 돈과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만큼 큰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여행이라면 실제로 날짜를 잡고 비용을 알아보는 것이다. 몇 년 뒤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여행을 떠나려 했다면, 우선 올해 며칠 다녀오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먼 나라가 아니어도 좋고, 가장 좋은 숙소가 아니어도 괜찮다. 아이가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이나 부모님이 편하게 다녀오실 수 있는 곳부터 살펴볼 수 있다. 돈이 더 필요했던 것인지, 시간을 내기로 마음먹으면 되는 일이었는지 그때야 분명해지기도 한다.

 

당장의 지출이 부담된다면 준비가 더 필요하다. 앞으로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면서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다. 다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망설여진다면 그 이유를 한 번쯤 살펴봤으면 한다. 예전에는 어려웠던 일이 지금은 가능해졌는데, 여전히 가장 빠듯했던 시절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형편이 나아진 만큼 생활에도 조금은 여유를 둬도 좋을 것이다.

 

투자 성과는 숫자로 남는다. 지난달보다 자산이 얼마나 늘었는지, 수익률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쓴 돈은 계좌에서 빠져나간 금액으로만 표시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충분히 쉬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했다면 그 돈은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자산이 얼마나 늘었는지와 함께, 그 돈이 자신의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돈을 쓰는 데도 때가 있다. 더 기다렸다가 좋은 조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모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지금 하는 편이 좋은 일이 있다. 돈은 나중에 더 모을 수 있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그때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둔 일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번에는 시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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