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거야. 집에 갈 거야. 집에 갈 거야.”
맑은 눈을 가진 30대 청년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치과 체어에 앉아 몸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 옆에는 보호자가 청년의 머리를 잡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엑스레이를 들여다봤다. 아. 왼쪽 아래 사랑니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게다가 꽤 많이 썩어 있었다. 그리고 전신 병력에는 ‘정신과 약 복용 중’이라는 글씨가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진료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청년의 움직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던 것. 결국 그날은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고,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전신마취가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의뢰서를 써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 어머니는 이런 일 말고도 힘든 일이 많으실 텐데. 어린아이라면 패디랩(아이들이 움직이지 않게 치과 체어에 고정시키는 장치)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치료해 볼 텐데. 다 큰 성인 남자를 치료하는 건 정말 무리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우리 병원에는 정신과적 어려움을 가진 환자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혹시 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결국 도시의 삶을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뒤 이렇게 조그만, 인구 5만의 작은 시골로 내려오게 되는 건 아닐까’하고. 도시의 사람 많은 곳에서는 조금만 소란을 피워도 시선이 쏟아진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충분히 따뜻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치과 치료를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환자가 생각보다 치료를 잘 받는다. 보호자와 함께 충분히 설명하고,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무섭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면 된다.
얼마 전에는 30대 다운증후군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치료할 치아가 꽤 많았다. 신경치료도 해야 했고, 발치도 해야 했다. 평범한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치료다. 나는 계속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무섭지 않아.’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아프지 않게 해줄게.’ 그녀가 내 말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마취할 때까지만 해도 거부감이 심했던 그녀는 이윽고 치료를 잘 받았다. 그리고 며칠 전 정기검진을 위해 다시 병원에 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더니 주먹을 내민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이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이파이브처럼 주먹을 맞대자는 뜻이었다.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그녀는 그 행동으로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한 것이다.
작은 주먹에 나의 주먹을 경쾌하게 부딪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장애를 바라보는 눈에도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들을 먼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그저 한 사람이다. 기분 좋으면 웃고, 아픈 치과진료는 싫어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좋아하고, 또다시 만나면 반가워하는 사람.
최근 <안녕, 피터팬>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다. 방송에도 출연했던 전경철 작가는 중증 자폐가 있는 아들을 홀로 키워온 아버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것. 그래서 그는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게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중증 자폐인을 받아줄 시설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결국 그는 방송에 출연해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들을 받아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부모인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죽은 뒤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치과에서 환자를 만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배운다. 모두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 전경철 작가의 말처럼 ‘자폐는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조건’이라는 것.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