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5.03.16 13:57:36 제628호

폭풍우 속 자월도 질주

2010년 8월 27일 열대성 저기압이 남쪽 바다에서 밤새 올라오고 있었다. 제주와 남부지역에서 북상 중이었다. 언제 태풍으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8일 자월도(紫月島) 라이딩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잠 한 숨 못자고 밤새 폭풍을 지켜봐야 했다.

 

대기 불안정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전국에 내렸으나, 다행스럽게도 낮부터 세력이 꺾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해는 여전히 파도가 높고 안개도 짙게 낀다는 예보가 있었다. 날씨로 인해 많은 대원이 불참한다고 연락 왔지만, 계획은 그대로 실행됐다.

 

대원 6명이 자월도 라이딩에 참가했다.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는 내내 오늘의 라이딩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동인천에서 전철을 내려 자전거로 연안부두로 달린다. 아내도 걱정인 모양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단련된 몸과 마음은 필자를 이미 자월도로 가져다 놓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자월도, 어떻게 생긴 섬일까? 궁금증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연안부두에는 4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 지독한 라이딩 중독자들이다. 팀 이름도 bikeho lics, 자전거 중독자들 아닌가!

 

인근 해장국집에서 선지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연안여객선 레인보우호에 자월도 라이딩의 꿈을 싣는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자월도의 면적은 7.26㎢, 해안선의 길이는 20.4㎞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섬의 모양은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이고, 중앙에 주봉인 국사봉(166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북사면은 급경사이나 남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따라서 남쪽에 농경지와 부락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에는 소만입과 곶이 발달하였으며 북사면은 암석해안, 남사면은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다. 따라서 동남사면에서 시작해 국사봉 능선을 넘고, 다시 서남사면으로 내려와 해안도로로 돌아오는 코스를 잡았다. 섬의 역사는 1973년 옹진군에 이속 되었다가 1983년에 자월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인천 옹진군 자월면이 되었다. 2010년 기준 인구는 579명, 309세대이다. 주민들은 육지와 정기여객선으로 왕래한다.

 

여객선에는 많은 낚시꾼과 섬 주민들이 있었다. 선창 밖의 날씨는 조용했다. 파도도 그리 높지 않다. 배가 출항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젯밤 태풍이 온다고 떠들썩했던 뉴스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해상 날씨는 걷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것이 사실이다.

쾌속선은 거대한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달렸다. 엄청난 물보라는 이배의 속도를 가늠하게 했다. 마치 물위를 떠서 날아가는 듯 했다. 1시간을 넘게 달리니, 그제야 멀리 자월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는데, 역시 태풍 값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강풍이 불고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대기소에서 우장을 갖추고 폭우 속에 선착장을 수 십 바퀴 돌며 몸을 풀었다.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했다. 큰말, 두엉부리 업힐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아마 10%는 넘는 모양이다. 벌써 심장의 고통소리가 방망이질을 한다. 자전거길이 정비되지 않아 다시 변낭금 해변으로 되돌아 나왔다. 자월 3리! 여기서 북으로 자월도 최대 업힐 코스인 사슴개 고개에 도전한다. 사슴개는 점점 경사도를 높이는데 임도는 폭우로 인해 시냇물처럼 돼 버렸다. 그 길을 오르는데 15%가 넘으니 라이딩은 불가하다.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로 산을 오른다. 자전거 경사계가 18%를 넘는다. 마지막 최대고비는 22%! 서있기 조차 힘든 경사라 끙끙대며 끌바로 정상에 오른다.

 

땀이 폭우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사진에 담는데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 제대로 촬영이 되지 않는다. 이 난관의 생생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평균경사 10~15%의 싱글트랙 올마운틴(올마) 라이딩의 진수를 만끽하며 오르락내리락 아랫도리는 이미 흠뻑 젖었다.

 

누가 이 폭우 속에 험한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광경을 보면,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생전 처음 겪는 폭풍우 속 라이딩은 추억으로 남았다. 계속 빗물이 흘러내리는 트랙, 이끼 낀 돌바위, 자전거 바퀴가 1/3쯤 빠지는 물구덩이를 달리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는 폭풍우 속 질주는 계속 되고 있었다.

 

북쪽은 조용하고 빗소리만 들리는 음습한 산길! 풀들이 우거져 다리를 스치는데, 그 느낌이 마침 우리를 반기는 듯 하다. 비 오고 바람 부는 산속에서 거친 숨소리와 굴러가는 바퀴소리가 정적을 깬다. 수풀 우거진 저 멀리 어렴풋이 약수터가 보인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아~ 힘들다!”

 

그렇게 트랙 정상에 올라, 힘든 것도 잊은 채 일행들과 Bravo를 외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자전거 라이딩의 묘미는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통해 이룬 성공이다. 성공은 한 순간이지만, 괴로운 과정을 한 숨에 날려 보내기에 마약처럼 중독돼 자전거를 타는 지도 모른다.

 

다시 안개 속에 가물거리는 해안을 향해 다운힐을 시작한다. 국사봉을 비켜난 개활지에 또 하나의 업힐이 버티고 있었다. 8% 학대골 업힐이다. 이를 악물고 올라선 정상에는 풋풋한 피톤치드가 가득한 테르펜향이 난다. 크게 숨을 들이쉰다. 이 산에서 마신 정갈한 산소의 양이 얼마인가! 덕분에 폐활량이 커지는 것 같다.

 

쾌속으로 다운힐을 끝없이 하고 내려오니 장골해변! 모퉁이에 하나밖에 없는 매운탕집이 외롭게 있었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잡고기 매운탕으로 달랬다. 주인아주머니가 걱정하듯 물었다. 바람 불고 비도 오는데 어떻게 산속에서 자전거를 타냐고. 우리는 그저 웃기만 했다. 소주 한 잔을 드니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다시 라이딩에 들어간다. 선착장을 지나 동쪽의 죽바위 해변을 달렸다. 북쪽 언덕까지 계속 달린 후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다시 폭풍우가 쏟아진다. 섬 날씨란 이런 것인가? 살롱버스라는 이름의 생맥주 가게에서 맥주 한잔으로 자월도 라이딩을 마감한다. 밖에는 광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지만, 우리의 기쁨은 맥주잔 위에 거품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바람이 잦아들었다. 배가 출항한다고 한다. 하마터면 이 외딴 섬에서 하루를 묵을 뻔했다. 올 때와 같이 쾌속선은 흰 물보라를 뿜으며 순식간에 인천 연안부두에 닿았다. 배도 출출한 저녁 7시! 인근식당에서 꿀맛 같은 병어조림으로 산속 25㎞ 라이딩을 마무리했다. 보글보글 끓는 병어조림 냄새가 방안에 가득한 가운데 모두가 이번 라이딩의 성공을 기뻐하고 있었다. 다시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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