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 시끌벅적, 성인형 ADHD 톺아보기

2024.04.17 07:28:50 VOL178/2024봄여름호

글 / 문지현 원장(미소의원)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다른 과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병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에는 우울증(더 정확하게는 주요우울장애)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우울증인 것 같아요”라면서 병원에 오는 분들이 많았죠.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조현병 환자나 양극성 장애 환자들도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우울증은 여전히 환자수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이전에 비해 그 유명세가 좀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공황장애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명인들 가운데 자기가 앓고 있는 병으로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연예인 병’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니 공황장애 맞는 거죠?”라면서 내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행이라면 이 시기를 지나면서 정신과 질환 자체를 숨기고 터부시하던 풍조에서, ‘아 그런 식으로 아플 수 있구나!’하
며 조금씩 공감하고 공유하는 풍조로 변화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는 건데,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핫! 하게 등장한 병이 ‘성인형 ADHD’입니다.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머릿글자를 딴것으로, 우리말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번역됩니다. 소위 ‘국민 정신건강 주치의’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이 시리즈에도 성인형 ADHD 사례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성인형 ADHD 간단 체크 리스트도 제시가 되는데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든지, 저축을 못하고 돈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비교적 익숙하고 보편적인 증상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다닥 체크해 보고는 “맞아! 나도 ADHD였던 거야!”하면서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들이 왕왕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오신 분들 가운데 실제 ADHD인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중이 잘 안된다거나, 욱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 꼭 ADHD에서만 나타나는 모습은 아니어서, 한동안 ADHD 진단 및 치료 비율이 (외국에 비해) 너무 낮다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ADHD 과잉 진단을 걱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성인형 ADHD를 진단하는 제일 기본적인 틀과 함께 ADHD가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준표(진단기준)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정신과에서는 어떤 병을 진단할 때 기준표를 가지고 하나씩 체크를 해봅니다. 제가 정신과 전공의가 되고 나서 놀랐던 게 “헉, 이 기준표만 있으면 다 진단이 된다는 거야? 그럼 누구든지 다 진단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랍니다.

 

어렸을 때 해보던 앙케이트 설문지처럼, 그렇다 아니다에 표시를 하고 몇 개나 해당이 됐는지 헤아리면 진단이 내려지니, 얼마나 진단이 쉬운지 말입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로 지낸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지금 보이는 이 모습을 우울(불안/ 충동/ 감정 기복 등등)로 봐야 하는 건가?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불안한 것 아닌가?’와 같이, 어떻게 보면 의학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서 절대로! 진단이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요.

 

실제로 최근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안에서도 진단을 내리는 것에 제한되지 말고 증상을 잘 관찰하면서 환자의 삶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진단은 아무래도 상관없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ADHD인지 아닌지 걸러내는 1차 검사로 간단하게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은 ‘성인 ADHD 자가보고 척도(K-ASRS)’로, WHO에서 2010년에 개발한 것입니다.

 

- 어떤 일의 어려운 부분은 끝내 놓고도,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 체계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까?
- 오래 앉아 있을 때,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발을 꼼지락거리는 경우가 있습니까?


위와 같은 질문들을 포함하여 총 18개의 항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전체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앞서 금쪽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10가지 체크리스트 보다 훨씬 제대로 된 진단 기준이자 조금만 웹 검색을 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성인형 ADHD는 아닐까 궁금한 분이 있다면 최근 6개월 사이 내 모습을 기준으로 점검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18번까지 점검해 보는 게 부담스럽다면 1~6번까지만 체크해도 어느 정도는 윤곽이 나옵니다. 6가지 문항 가운데 4문항이 해당된다면 성인형 ADHD 가능성이 거의 90%이므로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도록 권유합니다.
 

참고로 위의 ADHD 자가 보고 척도에서는 ‘6개월’이라는 기간을 대상으로 평가하지만, 실제 ADHD의 진단 기준에는 ‘12세 이전부터’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는지 하는 것이 들어간다는 점은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즉 어렸을 때는 전혀 안 그랬는데 요새 몇 달 사이에 갑자기 저런 모습이 나타났다면 기준표에 따를 때는 ADHD이지만 실제 진단에서는 ADHD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성인형 ADHD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볼까요? 제일 핵심적인 증상은 부주의함 또는 과잉행동-충동성의 두 가지 축입니다. 덜렁거리는 사람이나 충동적인 사람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건데요. 성인형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단순히 덜렁거리거나 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격 및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리기 쉽습니다. 업무 태만이라거나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자주 받지요.

 

왜 그러냐고요? 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참고 견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참는 게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요소인데, 이게 안 되다 보니 삶의 여러 가지 영역이 삐거덕거리게 됩니다. 이런 문제들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유급을 한다든지 등으로 어린 시절부터 드러납니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문제도 끝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요? 본격적인 삶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집니다. ADH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직업 유지가 잘 안되거든요. 일하는 게 마냥 재밌고 즐거운 사람, 별로 없으시죠?

 

치과의사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저도 그렇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데요) 힘들지만 참으면서 견디는 것이 거의 모든 직업에서 요구되는 바인데, ADHD라는 병은 그게 안 되는 게 핵심적인 문제이다 보니 하는 일이 계속 바뀝니다. 실제로 외래에서 치료하던 환자 한 분과 “이번에는 수습 기간이라도 끝까지 채워보자!” 같은 약속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참아야 할 것들이 직업에만 있을까요? 아니죠! 개인적인 삶에는 더욱 가득하죠. 어쩌면 집 밖에서 참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배우자를 참아내고 아이들을 참아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부부 관계에도, 자녀 양육에도 무수한 문제들이 생깁니다. ADHD군의 이혼율이 28%, 대조군의 이혼율이 15%로 차이가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참을성의 빈자리는 중독으로도 연결이 되어서, 게임, 스마트폰, 음주 등에 쉽게 중독 성향을 보입니다. 음주운전, 과속, 교통사고 등 운전 관련 문제도 나타납니다. 꾸준히 참으면서 해내야 하는 돈 관리, 시간 관리, 정리 정돈 등을 스스로 하기 어렵습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아닌, 내면의 문제들은 더 심각합니다. 사람들과 자꾸 부딪히고, 이런 저런 사고를 친 끝에 주변의 걱정을 사다 보면 자존감이 저하되고 좌절감, 우울감 등의 후유증을 겪게 됩니다. 결국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삶의 만족도가 확연하게 낮습니다.

 

ADHD에 대한 연구가 진행이 될수록, 이 병은 뇌기능의 이상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전두엽 피질이라고, 주의력과 억제 조절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곳에서 도파민계와 노르에피네프린계의 이상이 ADHD 증상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중요한 치료는 약물 치료입니다. 정신과 약물은 독하다, 중독된다 등 다양한 오명을 갖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나마 ADHD 약물 치료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에 비해 심리적인 거부감이 다소 낮은 편이라고 느껴집니다.

 

기분이 안 좋다고 약을 먹나?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약을 먹으면 공부를,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적극적으로 약물 치료에 찬성을 하게 되니까요. ADHD의 치료제로는 정신자극제를 사용합니다. 자극제가 아닌 계열의 약도 있는데, 정신자극제의 부작용으로 식욕이 너무 떨어지거나 심혈관계 이상이 생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약물 복용을 통해 집중력이 좋아질 뿐 아니라 충동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행동의 문제들이 나아지고 인간관계나 더 나아가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DHD 역사에서 유명한 연구들 가운데에는 상담이나 다른 치료를 병행하는 것보다 약물 치료 단독으로 한 경우에 가장 치료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도 있지만, 여러 가지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할 수 있는 치료들, 즉 상담도 하고 훈련도 하고 연습도 하며 다양하게 치료하는 것이 역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ADHD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 뒤에 상담을 하다 보면, 병명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속상해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병이 있었던 거네요. 오히려 안심이 되어요”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사이 겪어왔던 인생의 많은 혼란이 ADHD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받는 위로가 있고병이라는 건 결국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 때문이죠. 그래서 ADHD의 진단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앞으로 어떤 게 좋아졌으면 하는지 목표를 세우게 돕습니다.

 

대부분 병이 그렇듯 ADHD 역시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열정과 에너지, 창의력도 많다는 특징이 있지요. 유명인 가운데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게 될 겁니다. 자신이 ADHD임을 확인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받아들이는 과정을 권합니다.

 

멀티 태스킹은 절대 금물! 주변 및 일상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처럼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시점이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ADHD를 갖고 이 시대를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ADHD는 결국 나의 한 부분이며 오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ADHD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나를 위로하고 또 격려하며 끝까지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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