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닌 의미

2023.06.22 15:18:46 제1021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618)

시간을 이해하는데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시계 초침은 간단하지만, 마음 속 시간은 쉽지 않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시간이 짧아지고 지루하면 길어진다. 축구 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있으면 마지막 3분이 30분처럼 길고, 지고 있으면 20분도 2분처럼 짧다. 이처럼 마음 속 시간은 고무줄마냥 늘었다 줄었다 한다. 반면 마음 밖 세상 속 시간은 정해진대로 돌아간다. 자연계 시간은 변함없다. 자전으로 하루가 일정하고 공전으로 1년이 일정하다. 일정한 자연계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때가 되면 싹이 트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사람과 연관되면 시간이 고무줄처럼 변한다. 때로는 시간의 흐름도 바뀐다. 비행기가 연착되고, 공사 기간이 지연된다. 인간의 시간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한다. 심지어 마음속 시간은 멈추거나 퇴행조차 일어난다.

 

지난 일요일에 등산을 다녀오면서 횡단보도에 도착하니 신호등이 바뀌었고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건너는 중이었다. 그중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했건만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3명 정도가 천천히 어슬렁거리면서 걸었고 대기선에서 기다리던 택시 기사는 경적을 잠깐 울렸다. 그러자 어슬렁 걷던 한 명이 기사에게 화를 내고는 차가 지나갔는데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하고 있었다. 잘못은 본인이 하고 남의 탓을 하는 전형적인 편협한 노인의 모습은 나이가 들수록 연륜으로 성숙한 모습을 꿈꾸던 필자에게 깊은 실망감을 주었다. 자연계는 시간이 경과하고 나이가 많아지면 성숙해지는데 왜 사람 마음은 시간이 멈추거나 심지어 역으로 흐르기도 하는가.

 

최근 들어 필자 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보여서 피곤하다. 출근길에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하고 횡단보도를 걷는 중고생을 보면 교통사고가 염려되고, 스마트폰만 보며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을 보면 낙상이 걱정되고, 신발끈이 풀리거나 멋으로 트레이닝복 끝단을 조이는 끈을 길게 냈으면 넘어질 것이 염려된다. 라디오 토크에 출연한 국회의원이 자신의 당 사람들은 선생이나 ‘님’자를 사용하고 반대당에서는 ‘씨’라 부르고 심지어 대통령조차 ‘씨’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으면 최소한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인격이 사라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존경하지 않아도 일국의 대통령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를 대통령으로 삼고 있는 국민이 불쌍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나이는 아니건만 그 정도의 예의도 없는 사람이 나라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존경과 존중이 다름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과 직책이 다름도 모른다. 사람은 싫고 좋을 수 있지만 직책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

 

사회 각처에서 점점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소풍이든 모임이든 각자가 가져온 음식물은 각자만 먹는다고 한다. 같이 먹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의 항의에 선생님이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담임선생님은 모든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허락받는다.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인 학교가 이 지경이니 다른 곳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개인적 이기주의가 사회 상식을 넘어서 버렸다. 이혼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젠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가급적이면 동거만 하되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낳지 말 것을 종용하는 것이 상식인 시대가 되었다. 요즘은 결혼하더라도 1년간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것도 상식인 시대다.

 

인간 세상은 이미 뒤엉켜졌으며 심지어 사계절이 순환하던 자연계 시간도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순리대로 흐르건만, 모든 일에 사람이 개입하며 시간조차 오염되었다. 자연이나 세상의 시간 흐름을 믿지 못하는 개인의 조급함이 오류를 만들었다. 각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개인이 해결하며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점차 스스로 섬이 되어 가건만 본인은 모르고 결국엔 고립되어 외로움과 우울이란 섬에 갇힌다.

 

자연의 시간에 맡기고 세상일을 마음속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마음의 시간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다면 마음의 시간은 멈추고 평화를 얻을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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