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순(先着順)이란?

2023.10.20 16:56:32 제1036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633)

영어에서 First come, first served는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받는다는 의미로 선착순을 의미한다. 사전적으로 ‘선착순(先着順)’은 먼저 도착한 사람 순서대로라는 의미이다. 어떤 특수 상황이 아니거나 선착순 조건인 경우엔 맞지만 모든 경우가 선착순은 아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가르치는 사회 기본 상식이다. 선착순은 기차표를 사거나 공연장에 입장을 기다리는 등과 같이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이 가장 합리적일 때 사용되는 보편적 룰이다. 하지만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착순이라는 단어보다는 영어의 First come, first served basis라는 표현이 더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해준다. basis는 이것을 기준으로 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선착순을 기준으로 했을 때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 소재 병원 응급실에서 자신의 남편보다 늦게 실려 온 환자를 먼저 치료했다는 이유로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1시간이 넘게 폭언을 하고 고소당하는 일이 있었다. 남편은 초진 후에 검사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심정지 상태 환자가 도착했고 의료진들이 응급환자에게 급히 달려간 상황이었다. 의료진들은 항의하는 환자 보호자에게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고 위중한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하는 곳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선착순을 주장하며 항의와 폭언을 지속했다. 심지어 경찰이 출동한 이후에도 막말을 지속했다. 모든 곳에서 선착순이 절대적인 룰이 아니며, 병원은 위중한 사람이 우선이고, 영화표나 음식점에서 기다릴 때는 선착순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 것을 강조한 것이 영어의 basis다. 그 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몰랐거나 혹은 모르는 척을 했거나, 국소적인 룰을 전체로 확장시켰거나, 자신이 무조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화풀이 대상을 찾았거나, 자신이 항상 옳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왜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사건이 발생하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사회가 자정작용 기능을 상실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시적인 기능 장애라면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영구적인 손상이라면 심각하다. 회복을 위해선 회복 탄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의 회복탄력성은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정의와 상식이다. 윤리와 도덕은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한다. 하지만 핵가족과 일인 가족으로 가정교육은 상실됐다. 학교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윤리교육과 집단협력 교육시스템이 붕괴됐다.

 

학교 윤리교육시스템이 붕괴된 상태에서 교육받지 못했던 세대가 이제 학부형이 되었고, 가정을 꾸리고 남편 혹은 아내가 되었다. 물론 응급실 폭언은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나, 필자는 학교 윤리교육시스템이 붕괴된 결과가 이제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 종료 전까지 작성하지 못한 답안지를 수거했다고 소송하는 부모나,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보다 남편을 먼저 진료하라고 선착순을 주장하는 아내나 결국 학교와 가정에서 윤리와 도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그들은 매사에서 이런 일로 부딪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한두 번은 이겼다는 승리감에 기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반복되다 보면 피로감이 축적되고 결국엔 한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힘든 상황에 도달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그 상태에 도달하여 나타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 또한 붕괴된 윤리교육시스템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심리적 문제성을 지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니고는 인간의 본성은 선행을 했을 때 뿌듯함과 기쁨을 느낀다. 반면 악행이나 불선을 행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양심이 작동하면서 불편해진다. 선진사회일수록 개인이 악행보다는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만큼 타인도 존중되어야 한다. 배려하는 미덕이 상실된 사회는 각박하고 모두를 힘들게 한다. 교육이 살고 배려가 미덕인 사회가 되어 스스로 존중받는 시대가 되길 꿈꾸어 본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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