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19일. 거리에는 칼바람이 몰아쳤다. 예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따뜻한 날이 지속됐지만, 12월에 들어서자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동장군의 횡포가 거리를 휩쓸었다. 며칠 전 고교동창 동호회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20개의 정거장을 거치고, 한번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이대역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전동차가 막 들어온다.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차량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콩자루가 터져 콩이 쏟아지듯이. 사람들이 다 나오기도 전에 젊은이들이 비집고 들어간다. 필자도 밀려서 차에 타긴 했으나, 일반석으로는 가지 않으려 했다. 일반석에 서 있으면 젊은이들이 양보라는 마음의 고통을 느낄까봐 노약자석으로 갔다. 그쪽도 꽉 차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인들 앞에 서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 순간 어느 50대 초반의 중년 신사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가 필자를 보자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사양했으나 고집스럽게 자리를 양보했다. 어쩔 수 없이 앉고 말았다. 단정한 모습의 그는 낡은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꽤 추워 보였다. 필자가 자리에 앉자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사당역이라고 하니까, 그는 신천까지 간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명함을 줬다. 그는 어느 조그만 지방의 개척교회 부목사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성인이 돼서는 동네조폭으로, 영세 상인들에게 폭행을 일삼고, 그들을 협박해서 뜯어낸 돈으로 방탕하게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영접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는데, 매일 매일이 행복하단다.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마음은 부자라고 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치아가 듬성듬성 빠졌고, 눈망울은 사슴 같았다. 갑자기 자신이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잘 익은 홍시를 꺼내 앉아있는 어르신들과 필자에게 2개씩 건넸다. 엉겁결에 받고 말았다. 홍시를 나누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이 마치 천사 같았다. 그의 초췌한 모습이 가여워, 언젠가 연락이 닿으면 그에게 작은 치과 선물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진실한 기쁨은 돈, 명예가 아니라 작은 나눔에서 저절로 생긴다. 세상에서 돈이 많다고, 또 명예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과 명예는 반드시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누가 나보다 많이 가졌나, 누가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냐에 따라 정해지는 그런 가치는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자기만의 성을 쌓아 아집과 독선이 성장하게 된다. 부와 명예는 흐르는 물과 같아 조금씩 빼내지 않으면 고인물이 돼 썩어간다. 따라서 마음과 본성도 썩어 죄를 지고, 병들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 목사는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버림과 함께 나누는 곳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사당역에서 내렸지만 그의 사슴 같은 눈은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짧기에 귀하고 소중하다. 때문에 삶은 단련돼야 한다. 더럽고 어려운 난관에서 빛을 발하는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며칠 후 다시 지하철을 탔다. 꽉 찬 지하철에 경로석이 한 자리 비어 있었다. 한쪽에는 70세 가량 돼 보이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다른 한쪽에는 50세가 채 안된 젊은 아낙이 앉아있었다. 그 아낙은 핸드폰을 가지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킬킬 웃고 있었다. 몇 정거장을 갔을까, 을지로3가역에서 노부부가 탔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영감님과 꾸부정한 할머니! 자리를 양보했다.
필자보다 연배이고 몸이 안좋아 보여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흰머리의 노신사가 양보하니 의아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앉았다. 고맙다고 중절모를 벗어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냥 서있게 됐다. 옆에 있는 50대 아낙은 흘낏흘낏 보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서 있는 할머니는 자신의 부모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을 텐데, 마음은 편치 않았다. 뒤에 서 있던 60대 중년이 혼잣말로 “참 그거 모양이 좋지 않구만” 하고 혀를 찼다. 그 소리를 듣고도 아낙은 그냥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심히 갈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몇 정거장을 지나 갑자기 쏜살같이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항상 작은 욕심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는 법이다. 자리를 양보했으면 떳떳하고, 기쁘고, 감사를 받았을 텐데. 그 작은 욕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부끄럽고, 마음의 갈등을 느끼니 이것이 바로 지옥 아니겠나.
오늘은 아침부터 칼바람이 불었다. 저녁에는 마포구치과의사회 송년회가 있다. 기타연주를 부탁받았다. 새벽 4시부터 리허설을 하고, 병원에 나와 환자가 없는 동안 피나는 연습을 했다.
요즈음 황혼기를 사는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강변에 나가면 노을을 벗 삼아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분다거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실버세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필자도 자전거로 건강을 지키지만 지친 영혼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데는 악기 연주가 좋다고 생각해 2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프로처럼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공연에 몇 번 초대 받기도 했다.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케이블 등 각종 액세서리를 넣으면 그 무게는 7kg에 달한다. 잠시 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먼 거리를 메고 걸어가면 어깨를 찍어 누르는 듯한 고통을 받는다. 잠을 자지도 못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계속하는 연습은 그야말로 고통이다. 머리로 외우면 잊어버린다. 끊임없는 반복은 몸에 기억되어 저절로 움직이게 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연주할 때 음을 잊어 실수하는 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실수하지 않으려는 강박감이 실수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몸에 배인 연주 실력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수가 없다. 이런 고통이 없이는 무대에 오를 수 없다.
무거운 기타를 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마침 경로석이 비어있어 앉았는데 신촌역에서 색소폰을 멘 노신사가 탔다. 옆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건넨다. “기타 하시는 모양이죠. 참 어려운 악기하시네요. 기타는 시작할 때 웃고, 끝날 때 우는 악기지요”라고 말한다. “색소폰도 어렵지요?”라고 묻자 굳은살이 배긴 손을 보여줬다.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색소폰은 애드리브가 실력을 판단한다고 한다. 애드리브는 중간 중간 임의대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기타도 마찬가지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전철을 갈아타고 공덕역에 내리니 칼 같은 바람이 분다.
더 부페라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많은 마포구 회원들이 와 있었다. 얼른 케이블을 앰프에 연결하고 스탠드에 마이크를 끼우고 노트북에 전송된 ‘더스트 인 더 윈드’를 틀었다. 리듬에 맞춰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연주에 들어갔다. 손가락은 음악에 맞춰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서의 쓰리핑거 아르페리오 주법!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연주다. 4분이 가량 되는 연주를 마쳤을 때는 방안이 흔들릴 정도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앙코르를 외친다. 비장의 발라드 곡을 한번 더 연주하고 기타를 놓았다. 백발 노신사의 연주에 회원들은 인생이 아름답다고 했다. 부럽다고 했다. 선배의 실버인생이 좋았던 모양이다.
모든 것의 완성에는 고통이 따르나 성취 뒤엔 기쁨과 보람이 따라온다. 채근담에 이런 얘기가 있다.
「糞蟲至穢 變蔿蟬(분충지예 변위선), 而飮露於秋風, 腐草無光(이음로어추풍, 부초무광) 化蔿螢, 而耀采於夏月(화이형, 이요채어하월)」땅속에서 지저분하게 살던 굼벵이는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에 사는 애벌레는 반딧불이가 되어 여름밤을 빛낸다.
모든 성공과 존경받는 삶은 어렵고 괴로운 과정을 거처야 이뤄진다. 송년회가 끝난 뒤, 거리에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택시도 끊긴 거리를 배웅하는 후배들과 함께 걸었다. 아름다운 선후배의 우정의 걸음이 눈 위에 찍히고 있었다. 멀리 눈보라 속에 택시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기타를 멘 노악사는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