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9일, 새벽의 보성강은 신비스런 물안개로 우리를 맞이한다. 안개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벚꽃 무리가 몽환적인 신비를 연출한다. 대원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김치찌개를 뚝딱 먹어치우고 오늘의 여정을 준비한다.
보성강변 숙소 앞에 자리 잡은 대원들은 선두의 신호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17번 국도를 타고 구례시 외곽을 돌아 북쪽으로, 산수유 마을인 산동면 상위마을 쇠작골로 가기 위해 북으로 방향을 잡는다. 냉천리에서 섬진강과 이별한 일행은 이평리 구만제 호수를 거쳐 산동면으로 달린다. 산동교차로에서 지리산 관광호텔, 송원리조트를 지나 산동면 대평리로 서시천을 따라간다. 서시천은 매화, 산수유로 우리를 맞는다. 쇠작골 정상에서 칡차로 목을 축이고, 상위 산수유마을로 들어갔다. 멀리 지리산 노고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산골 집집마다 산수유 재배로 살림을 꾸려나고 있었다. 산수유 나무는 10월이 되면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를 말린 것이 바로 산수유다. 간과 콩팥의 강음, 강장에 좋아 한약재로 쓰이고, 차로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수유가 이런 효능이 있다니...
다시 쾌속 라이딩. 구만저수지를 지나 광의면 서시천 강둑을 따라 봄 속을 달린다. 이제 막 꽃잎을 터뜨린 벚꽃이 줄지어 서서 우리를 맞이한다. 섬진강을 따라 양천리에 접어들자 서울에서 벚꽃을 구경하러 내려온 차들로 길이 꽉 차 있었다. 차들 사이를 곡예 라이딩을 하며 비켜 나간다. 길은 숨막힐 듯 핀 벚꽃으로 꽃 대궐을 이뤘다. 보기만 해도 좋은 벚꽃들!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남도대교를 건너는데, 다리 위에는 차들이 움직이지 못해 마치 거대한 주차장이 돼 버렸다.
섬진강 위에 놓인 이 다리 하나를 두고 서쪽은 전라도 말씨, 동쪽은 경상도 말씨. 강은 이렇게 생활과 언어, 문화를 갈라놓고 있었다. 다리를 접경으로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 필요한 물건을 팔던 장터가 지금 화개장터다. 화개장터는 하동군 화개면의 지리산 물줄기인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열렸던 장터로 섬진강의 기항종점 즉, 행상선 돛단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대규모 장터가 생기게 됐다.
화개 장터에서 파는 물건은 청정지리산의 무공해 산나물과 탁월한 효능의 임산물, 한약재, 맛좋고 영양 많은 제철과일 등 웰빙 특산물이 유명하다. 지금은 영호남의 화합과 문화의 장터로 자리 잡았다. 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섬진강 특산 재첩국, 산나물, 녹차, 약초 등의 특산물이 있었고, 신명나는 엿장수의 구수한 입담과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고 흥이 겨웠다.
혼이 빠진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인파에 휩쓸려 지역 명물인 사찰국수도 먹지 못한 채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현장 평사리로 발길을 돌렸다. 약 10㎞를 달리자 평사리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봉대천을 따라 평사리로 달려갔다. 동정호와 정자, 악양루가 운치를 더하는 평사리! 일행은 우선 악양면 식당에서 고픈 배부터 달랬다. 식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는데 조기백반은 맛이 일품이었다. 역시 밥은 배고플 때 더 맛있는 법인가?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 최참판댁을 방문했다. 악양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위치에 최참판댁이 있었다. 경치가 너무 좋아 중국의 호남성 악양(岳陽)에 견줄만해서 하동의 악양에 이와 똑같은 이름의 동정호(洞庭湖)와 들판을 지키는 부부소나무를 두게 됐다고 한다. 또 동정호, 악양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석문동정수(昔聞洞庭水), 금상악양루(今上岳陽樓) 즉 ‘예전에 동정호의 절경을 소문으로 들었더니,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네’라는 시의 제목인 등악양루(登岳陽樓)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평사리를 뒤로하고 섬진강 재첩을 맛보기 위해 20㎞ 가량 떨어진 하동으로 향했다. 계속되는 벚꽃터널을 지나 19번 도로를 타고 원 없이 벚꽃을 보며 섬진강을 따라 갔다. 머리 속엔 온통 재첩국 뿐이었다. 재첩은 간과 담낭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재첩에 다량 함유된 비타민 B12는 간 기능 향상에 좋다고 한다. 그것을 떠나 이미 80㎞를 달린 우리에게 재첩국은 피로를 풀어줄 보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동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큰 식당에 들어갔다. 할매집이라고 하동에서 유명한가 보다.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재첩국 한사발에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랬다. 피로를 어느 정도 풀고 마지막 20㎞의 장정에 오른다. 광양만이다. 섬진강이 끝나는 곳에 있는 광양! 우리는 19번 도로를 따라가다 섬진강 하구에서 강변도로로 들어갔다. 끝까지 섬진강과 같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길 이름도 재첩길이었다. 하동은 재첩과 참게가 특산물이다. 강을 따라 줄지은 식당 간판에는 재첩이라는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재첩 체험마을을 지나서 달리니 조개섬이 나타났다. 조개섬에서 우회전, 섬진강교를 건너니 하구의 강변도로가 나온다. 861번 강변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니 망덕포구가 나타났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일행은 시원한 해풍을 받으며 배알도 횟집에서 섬진강 특산물 벚굴로 저녁식사를 했다.
바위덩이 만한 벚굴을 불에 구어 먹는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떠들던 대원들은 정신없이 먹는 바람에 포크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맑은 물속에서 벚꽃처럼 하얗게 피었다고 벚굴이라고도 하고, 벚꽃이 필 때 수확한다고 해서 벚굴이라고도 한다. 다른 말로 강굴이라고도 하는 벚굴은 그 크기가 20~30㎝이고 큰 것은 40㎝ 짜리도 있다고 한다.
굴보다 비린 맛이 덜하고 비타민, 아미노산이 많아 이 지역 사람들은 강 속에 사는 살아있는 보약이라고 부른다. 5kg에 4만원이라니 정말 저렴하다. 100㎞ 라이딩을 마친 대원들에게 소주한잔과 벚굴구이는 피로를 날리는 묘약이었다. 섬진강변의 노을이 지는데 우리는 벚굴에 취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섬진강은 그렇게 푸근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꽃과 절대 잊을 수 없는 입맛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