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절정인 10월 마지막 주말 우리는 단풍으로 유명한 제천과 충주호(청풍호)를 둘러보기 위해 2009년 10월 30일 토요일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오전 6시, 2대의 밴이 픽업을 시작하여 1시간 만에 10명의 바이콜릭스대원이 단풍의 나라로 달려간다. 영동고속도를 타고 이천 휴게소에서 가지고온 김밥과 어묵국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다. 우리의 출발점은 제천 의림지다.
80㎞의 여정을 위해 모두들 각오가 대단하다. 자전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과 달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세밀하게 볼 수 있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깊숙이 들어가서 가을의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90%이상이 온로드(포장도로)이므로 하드테일(앞에만 샥옵소버가 한 개있는 자전거) 라이트스피드를 선택하였다.
이 자전거가 오늘 나와 친구가 돼, 가을의 자연을 누비게 될 것이다. 간식점검이 시작되었다. 에너지바, 떡, 바나나, 사과, 초콜릿 등 각자의 가방에 푸짐하게 준비해왔다.
다시 짐을 챙겨 영동고속도로, 만종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제천으로 향한다. 제천 IC에서 제천시내를 통해 의림지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의림지 주변을 도는 일주 라이딩을 하는 우리 팀의 흰색, 핑크색의 자전거 대열은 의림지의 초록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색의 조합으로 자연의 그림 속에 녹아들어갔다. 워밍업을 마친 50m의 자전거 대열은 피재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조금 나아가니 제2 의림지가 있었다. 의림지보다 조금 작지만, 그 자태는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곳에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3%, 5% 서서히 각을 높이는 피재길! 5㎞의 긴 업힐, 주변은 유난히 빨간 단풍이 줄을 서서 우리를 맞이하는데, 마치 응원팀이 붉은 수술을 흔들며 응원하는 것 같다. 아름다움에 마음이 설렌 우리들은 힘든 것도 잊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데 단풍 빛에 물들어 붉어진 것인지, 힘들어서 붉어진 것인지 모두가 얼굴이 붉게 물들어간다. 마지막 300m는 10%이상의 오르막이다.
친구들의 거친 숨소리가 귀를 때리는데 저 멀리 정상에는 찻집이 있었다. 거친 숨을 토하며 있는 힘을 다해 비틀거리며 올라 도래찻집마당에 널브러져 버렸다.
얼마나 단풍에 물들어 있었던가 다시 일어나 다운힐에 나선다. 바람처럼 가을 속으로 달려 내려간다. 명암3거리에 남쪽으로 핸들을 틀고 5㎞ 내려가니 명암저수지가 나왔다. 호수주변도 온통 단풍일색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은 본적이 없다.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친구의 얼굴도 붉은 삼홍(三紅)! 산홍(山紅), 수홍(水紅), 안홍(顔紅)이다. 온통 붉은 기운 속에 빠져들어 우리의 망막까지 빨간색으로 물드는 것 같다. 잠시 쉬고 다시 남으로 달려 나간다. 봉암3거리에서 북으로 고즈넉한 구학역을 스치고 배론성지 가는 길목을 지나 제천천을 따라 잠시 달리니, 제천천이 휘돌아 북으로 물길이 나있는 작은 뾰족한 바위 정상에 정자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탁사정이다. 구학산과 감악산 사이 뾰족한 바위산 꼭대기에 지은 탁사정은 가뭄일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강 위의 기압절벽 꼭대기에 지은 탁사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 같은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되돌아와 배론성지 3거리에서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는 배론성지 가는 길로 접어든다. 3㎞의 부드러운 오르막을 오르니, 멀리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속에 동화 같은 배론성지가 보인다. 우리는 성지로 들어서며 성지의 역사도 잊은 채 동화 속 나라에 온 착각을 느끼며 단풍의 절정을 이룬 이 가을의 성지에 빠져 들었다. 하얀 대리석의 팔을 벌린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불타는 단풍 속에 묻힌 듯 성스럽게 빛난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 신학당이 있는 곳으로 발이 이끄는 대로 걸어 들어갔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이 이월의 꽃보다 붉다는 두보의 시가 새삼 생각난다.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위치하고 있는 배론성지는 한국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라고 한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가며 생계를 지키며 신앙을 성장시킨 교우촌이다. 배론이란 지명은 지형이 배 밑바닥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舟論(주론) 또는 俳論(배론)이라 불렀다 한다.
이곳은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에 둘러싸인 오지이며 10리쯤 가면 박달재와 연결된다. 우리는 배론성지의 불타는 단풍에 젖어 박달재로 향한다. 3㎞를 다운힐 해서 5번 국도를 따라 남으로 내려오다 장평3거리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서서히 오르막을 따라 서쪽으로 3㎞가니 박달재 관문이 보인다.
관문을 지나, 단풍, 소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1㎞오르니,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울려온다. 박달재 정상에는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동상이 있고, 1217년 고려 고종 때 거란10만 대군을 물리친 김취려 장군의 동상도 있었다.
낙엽지는 스산한 고갯마루엔 주막이 있어 노래에 나오는 도토리묵과 막걸리 한잔으로 낙엽 뒹구는 박달재의 서정 속에 마음을 달랜다. 박달재는 해발 504m의 고도로 구학산과 시랑산이 맞닿는 곳에 있으며 원시천을 사이에 두고 천등산과 마주하고 있는 첩첩산중이며 전나무, 소나무, 향나무 등이 울창한 산림을 구성하고 있는 오지이다. 그 옛날 이곳에서 과거보러 한양 가던 선비 박달과 산촌의 낭자 금봉과의 애절한 사랑이 스며 있는 곳, 과거에 실패한 박달을 기다리다 한이 사무처 죽은 금봉이를 울며 그리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박달도령의 슬픈 이야기가 스며있는 박달재! 벌써 주행이 40㎞를 넘고 있다. 반대편으로 내려와 박달재터널을 지나 청풍호로 달린다.
30㎞를 달려 닿은 금월봉! 모양이 금강산 같다고 작은 금강산이라 불린다. 다시 약 10㎞를 달려 청풍대교를 넘어 청풍호(충주호) 호반에 조성된 청풍문화재단지! 성문을 2명의 인형 수문장이 지키고 있다. 석양의 햇살이 나뭇잎사이로 반짝인다. 벌써 오후 6시가 되어간다. 9시간, 80㎞의 장정! 우리는 단양숙소로 가기 위해 밴에 자전거를 싣는다. 서산에 걸친 태양이 우리를 환송 하는 듯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