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해안 기행(2)

2015.11.20 13:39:41 제660호

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나로비치호텔에 들어와 10시쯤 자리에 들었을까. 기사와 남자 대원들이 온돌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필자는 잠자리를 옮기면 잠이 잘 오지 않아 주머니에서 팩 소주를 꺼냈다. 혼자 밖에 나가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조용하다 못해 쓸쓸한 외나로도 파도치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급하고, 소란스럽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런 서울의 병원생활에서 벗어나 이렇게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해변에서 나만의 적막한 시간 속에 자연과 함께 하는 이시간이, 나의 몸과 마음에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30분 정도 바닷가를 거닐다 돌아왔다. 까치발로 소리죽여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의 나로우주센터를 꿈꾸며...


얼마를 술의 힘에 의해 잠을 잤을까, 눈을 번쩍 떴다. 10월25일 일요일 새벽 6시30분, 보온파카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는 바람이 세찬데, 차가운 바람은 옷을 파고들고 있었다. 호텔 밖을 나와 해안가에 서있는데 멀리서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한분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걷기가 벅찰 정도로 한 발짝 떼며 걷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주름진 얼굴은 80세는 넘어 보이는 것 같았다. 헌 유모차속에는 한상자의 고구마가 담겨있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어딜 가시냐고 물었다. 몇 발자국 가던 할머니는 뒤돌아보며, 장에 가는 길이라 하였다. 할머니가 딱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것 한 상자에 얼마에 파시려고요” 라고 물어보았다. “사실라요” 하더니 꼬부라진 까만 손으로 고구마 하나를 들어보였다. 특산물인 호박 고구마였다. 나는 할머니가 이 무거운 고구마를 밀고 장터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오늘 할머니를 쉬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내가 살 것 같은 기대에 차서 30kg인데 3만5천원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장에 나가야 2만원 벌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골에서 2만원은 큰돈이다, 내가 알기로는 30kg이면 서울에서 8~9만원은 가져야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에서도 매일 고구마를 먹고 있다. 나는 5만원을 할머니께 드리고 유모차를 끌고 호텔에 주차된 밴에 실었다. 할머니는 “선상님 고맙습니다”하며 그 굽은 허리를 또 굽히며 감사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오늘은 집에서 쉬세요”라고 말하였다.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가벼운 발걸음이 사라질 때 까지 나는 손을 흔들었다.


‘이 고구마를 우리 대원과 나눠야지’라고 생각하며 호텔에 들어왔다. 준비를 마친 후, 외나로도 식당에서의 아침은 또 잊지 못할 맛을 나에게 선사하였다. 남도음식이 다 그렇듯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많은 반찬이 상위에 가득하다. 1인분 6,000원이라니… 조기구이, 꽃게탕, 간장새우장, 젓갈등 다양하다. 이번 고흥라이딩은 살찌는 라이딩이 될 것 같아 더욱 운동량을 늘려야 했다. 9시 나로우주센터 라이딩에 나섰다. 경사 5%의 업힐이 수도 없이 많다. 조구나루 교차로를 지나 교동교차로에서 동쪽으로 본격적인 봉래산 업힐이 시작됐다. 봉래산(410m) 능선인 시름재를 넘어야 나로우주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교동 저수지를 지나자 경사 10%의 업힐이 눈앞에 서있는 것 같이 우리를 위협한다. 3km의 오르막을 죽을힘을 다해 오른다. 눈에 열기가 뿜어져 고글에 김이 서리고, 숨은 가빠지고, 심장의 맥박은 빠르게 뛰는데, 다리에 오는 고통은 참기가 어렵다. 중간에 서있는 자세로 잠깐 쉰다. 이언덕의 정상은 시름재이다. 그 뒤의 길은 보이지 않는 정상, 봉래산 표지판이 정상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름재에서 우리는 주저앉아 버렸다. 저 아래 헤어핀 다운힐이 끝나면 나로 우주센터가 있겠지, 우리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우리는 무수한 헤어핀 다운힐을 달려 우주센터 공원에 이르렀다. 멀리 우주로켓이 당당하게 서있고, 우주센터 과학관이 웅장하게 보였다. 오전 11시라,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우주선 로켓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해변의 파도 소리 들으며 과학관으로 들어갔다. 센터에서는 우주과학 기술전시, 교육, 우주과학관이 있다. 과학관에는 탐사로봇조종, 우주복속에서 우주 유영하는 사진도 촬영시설 등 갖가지 우주 발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4D우주영화까지 보며 신비한 우주의 체험을 하고, 다시 팔영산을 향해 출발한다. 밴에 자전거를 싣고 봉래산 편백나무 산림욕장까지 올라가 산림욕장에서 피톤치드를 느끼고, 시름재에서 다운힐로 라이딩을 시작한다.


제 1나로대교를 지나 고흥반도 육지로 들어섰다. 동래도 3거리에서 북상, 다시 힘든 5~6%의 산길 라이딩이 시작된다. 옥강 3거리 지나 77번 팔영로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들판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지나 앞에 가는 대원이 가물가물 보이고 다시 고개 넘으니 해창만 제2 방조제가 나타났다. 멀리 보이는 8개의 바위가 나란히 산정상을 장식한 산! 고흥 8경 중의 하나인 팔영산(608.6m)이다.


점점 다가오는 팔영산! 들판에 우뚝 솟은 고흥을 대표하는 고흥의 최고봉, 팔영산의 웅장한 모습에 매료되어가고 있었다. 영남 월출산(813m), 해남 달마산(495m)과 더불어 호남 3대 명산이다. 팔영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 정맥으로 분지, 벌교부근 존재산 직전 적지봉에서 남쪽으로 분지된 고흥지맥의 남쪽 끝에 솟은 산이다. 8개의 봉우리는 1봉(유영봉) 2봉(성주봉) 3봉(생황봉) 4봉(사자봉) 5봉(오로봉) 6봉(두류봉) 7봉(칠성봉) 8봉(적취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좀 떨어진 주봉인 깃대봉(608.6m)까지 합치면 사실상 9봉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 팔영산을 도는 해안도로 금사리에서 산길도로를 다시 타고 영남면사무소를 지나 양사리 언덕을 넘어, 가장 경치가 좋은 남열리 해안 언덕길을 달리는데 해돋이 전망대가 있었다.


오른쪽은 절벽이고 까마득한 발밑에 희게 부서지는 파도 넘어 다도해의 섬들이 옹기종기 바다위에 떠있다. 남열 해돋이전망대에서 한숨 돌렸다. 멀리 나로도가 보이는데 석양의 금빛물결에 환상적인 다도해의 그림 같은 경치는 잊을 수 없는 환상을 나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남열리로 들어와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멀리 해안절벽에 범상치 않는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나로우주발사 전망대의 반짝이는 빛에 눈이 부시다. 진입도로는 밭길을 돌아 올라가는데 이 경사가 만만치 않다. 10%정도 될까 점점 가까워 오는 전망대! 전망대 오르는 길은 온갖 가을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꼭대기층 8층에 오르니 바닥이 회전한다. 내려다보이는 다도해는 환상이고 나는 하늘위의 신선이 되어간다. 바다건너 멀리 나로도 봉래산이 보이고 나로우주센터도 아스라이 아물거리는데 우리는 이전망대에서 마치 우주인이 된 듯 황혼의 금빛바다와 섬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남해 해안 절벽위의 전망탑 위에서 오늘 45km, 6시간의 라이딩이 끝나고 있었다. 황금빛 석양 속에서 우리 모두는 다도해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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