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그토록 갈망하던 자율징계권이 조만간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료의사 봐주기식이 아닌 공정한 처분을 통한 ‘신뢰구축’이라는 조건이 내걸렸다. 조건부 인정이긴 하지만 그동안 자율징계권 부여에 회의적이었던 보건복지부가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의과의 사례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검토한 후 치과와 한의과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치과계의 관심도 매우 높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최근 추진 중인 의료인 면허관리 제도 개선과 관련한 의사 자율징계권 인정 계획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 사태 등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인 면허제도를 개선하게 됐다”며 “의료인 면허관리를 정부가 다 맡아서 하는 것은 행정적 부담이 너무 크다. 상호 신뢰를 전제로 의료인 중앙단체에 넘겨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물의를 일으킨 의사의 처분 수위와 기간을 명시해 보건복지부에 요청하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현재도 의료인 중앙회가 처분을 요구할 순 있지만 사례가 많지 않고, 수용 여부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향후에는 권고를 받아들여 사실상 자율징계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자율징계권 부여에 조건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개선안은 보건복지부가 신뢰회복에 대한 제스처를 의료계에 취한 것”이라며 “동료평가제가 동료의사 봐주기식으로 공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여기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시행된다면 신뢰회복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강조했다.
권한 이양에 앞서 의료계 스스로 공정한 징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의료인 면허관리 제도 개선책으로 제시했던 동료평가제를 통해 자율징계에 대한 의지와 가능성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동료평가제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협의체 논의를 통해 의료계 내부 사정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동료의사라는 점에서 도입하게 됐다”며 “의사 모두가 조사대상이 아니다. 조상대상과 범위는 의견수렴을 통해 한정해 결정할 예정이다. 감시체계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동료평가제는 의료인 간 상호 평가와 견제를 유도하는 제도로,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현재 시행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조만간 이 제도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상은 △진료행위에 현격한 장애가 우려되는 경우 △면허취소 후 재교부를 신청하는 경우 △2년 이상 보수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지역의료인단체에서 ‘동료평가단’을 구성해 진료적합성을 평가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진료행위 적절성 심의위원회’에서 심의, 필요 시 자격정지 등의 처분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요청하게 된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