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1960~70년대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치과진료를 받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였다. 특히 시골 마을에는 개원의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진료 인프라가 형편없던 시절이었다.
지난 19일 서울시치과의사회 제60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제9회 의료봉사상’을 수상한 김영훈 회원(김영훈치과)은 1967년 개원한 이래 의료 현실을 직시하고, 꾸준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1976년 강원도 춘성군 170명 진료 △1977년 8월 8일 충남 서천군 130명 △1978년 충북 괴산군 202명 △1985년 경기도 화성군 202명 등 그간 무의촌을 방문해 성심성의껏 봉사활동을 펼침으로써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김영훈 회원은 “무의촌을 방문해보면 평생 치과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이들이 다수라서 치아의 상태가 매우 나쁜 경우가 다반사였다”며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시설과 장비가 열악해 틀니 제작 등은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면도 있었다”고 전했다.
젊었을 때, 기력이 있을 때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언제 돕겠냐고 말하는 김영훈 회원은 교회에서 주최했던 단체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지만 개인적인 봉사활동도 진행해 왔다.
김영훈 회원의 봉사정신과 이웃사랑 마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부의금 중 1,000만원을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유태리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평소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남모르게 장학금을 꾸준히 전달해왔다고 한다.
김영훈 회원은 “어머니가 37세에 홀몸이 되셔서 나도 학창시절에 등록금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며 “장학금 수혜 학생들이 열심히 학업에 정진해 훗날 본인들도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 소유의 자동차도 없을 정도로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실천해오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왔다.
김영훈 회원은 “어머니의 박애정신을 이어받아 그 뜻이 헛되지 않게 한 활동들이었는데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는 어렵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도 검약 정신으로 생활하며 형편이 곤란한 학생들을 도와준다면 용기와 봉사 정신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으로도 등단해 시집을 4권이나 출간한 바 있는 김영훈 회원. 좋은 시 창작을 통해 글로써 삶을 정리하고, 봉사하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꼭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김민수 기자/km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