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하지 말고 이해를 해보자

2024.06.01 07:23:40 제1067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664)

외국에 살고있는 딸과 대화를 하며 이야기가 계속해서 겉돌았다. 서로 각자의 말만 하다 보니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게 되고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어쩌면 두 사람이 그렇게 똑같냐면서 고개를 저었다. 똑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한 생각이 번득이며 스쳐 지나갔다. 딸이 ‘또 다른 나’라면 내가 나에게 설득하는 것도 설득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지루하게 서로 분노게이지만 올리며 반복하던 논쟁을 끊고 딸에게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바꾸자” 딸은 필자의 제안을 수락하였고 논쟁이 끝났다.

 

모든 협상이 그렇듯 부수적인 조항에도 동의했다. 우선 논쟁의 대상인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각자의 일은 각자의 결정을 이의 없이 따라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즉, 필자의 일이라면 필자의 결정을 따르고 딸의 일이라면 딸의 결정을 따르는 것으로 정했다. 다음으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피하고 다만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끝으로 이해를 하고 못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자의 몫으로 두기로 정했다.

 

딸이 외국에서 교육받고 생활한 지 20년이 넘었으니 생각, 사고, 가치 기준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같이 동행을 하거나 일을 하면 매번 충돌이 생겼다. 20년 외국생활의 문화적 차이인지 MZ세대와의 세대 간 차이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무리 맛집이더라도 필자는 1시간을 기다리며 음식을 먹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단지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데 1시간 이상을 허용하는 것은 가치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여행을 가서 평생 다시 올 수 없을 상황이라도 마찬가지다. 딸은 어렵게 온 여행이고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1시간을 기다려도 먹는 것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선친께서 필자와 둘이서 외출을 할 때마다 당신은 공무원이라서 버스를 탈 터이니 너는 혼자일 때 택시를 타라고 말씀하시고 늘 버스를 타시던 모습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정년퇴직하신 선친은 자식들과 의견이 가끔 충돌하자 “20만원 이상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에게 반대하지 말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우선 의견의 충돌이 생기면 의견 속에 매몰되기보다는 그것의 가치가 20만원 손해를 유발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각자의 감정을 건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20만원 이상 손해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필자가 부모가 되었고 자식과 의견 충돌이 생겼다. 지금 시대는 필자와 선친이 살던 환경이 아니다. 지금 시대를 살고있는 필자는 선친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노력에 에너지를 사용하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해주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환경이다. 이미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설득을 당하기엔 너무 많이 배웠고, 서로가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한다. 개인주의의 팽배로 가족 간에도 서로 잘 알기 어려운 시대다. 필자 역시 딸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설득은 본인을 기준으로 스스로 옳다는 전제하에서 상대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쉽지 않고, 자신이 틀린 경우에는 오류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반면 이해는 설득과 방향성이 반대다. 이해는 우선 본인을 설득해야 한다. 그 후에 상대를 포함할 만큼 이해의 폭을 넓혀야 가능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상대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좁은 상대를 만나면 도달도 하지 못하고 차이만 알고 말 것이다. 자신이 이해하든가, 아니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에 적지 않은 노력이 요구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선친의 생각과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 딸도 필자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산 찔레꽃 화분에서 꽃이 피려고 꽃망울을 지었다. 모양은 비슷한데 작년과는 다른 느낌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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