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가 없는 나라를 다녀왔다

2024.06.06 08:39:47 제1068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665)

오랜만에 LA를 다녀왔다. 6년 만에 다시 간 이번 LA 방문에서 예전과 다르게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LA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시간을 달려도 휴게소가 없었다. 급한 용변을 어떻게 하냐고 질문을 하자 가까운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를 찾아서 해결한다고 들었다. 다른 하나는 보통 상점엔 고객용 화장실이 없었다. 직원용 화장실은 감춰져 있고 고객사용을 불허하였다. 그런 경우에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 본 SNS동영상에서 미국 어디에선가 어떤 여성이 상점에 들어와 변을 보고 그것을 직원에게 던지는 장면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여성도 모든 사정과 방법을 동원하였는데도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생리적 현상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행한 행동으로 이해가 되었다.

 

커피숍에 들려 화장실에 가려고 하니 화장실 문 앞에 옛날 무전기만한 숫자 키의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문을 여는 비밀번호는 결제 영수증에 적혀있었다.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기는 했으나 사람이 많은 매장에서 만난 화장실 자물쇠는 거부감이 들었다. 부랑인을 막고 마약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조치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대형마트를 포함한 대부분 상점에서도 똑같고 직원용을 급한 고객조차 사용을 거절하는 것은 선을 넘은 느낌이다. 그나마 맥도◯◯와 커피 체인점 스타◯◯는 화장실 사용을 허락하는데 스타◯◯는 드물게 있고 가장 많은 곳이 맥도◯◯라서 휴게소 역할을 한다고 했다. 맥도◯◯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화장실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그곳도 자물쇠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직원에게 비번을 물어보면 가르쳐는 주었다.

 

명품들을 파는 아울렛 매장을 방문했는데 그곳 화장실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순간 무엇인가 알지 못할 비애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생명의 시간을 사고파는 ‘인타임’이란 영화에서 부자들이 사는 지역과 일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 영화가 현실 세계에서 나타난 듯한 느낌이다.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야 할 때가 인간은 가장 비참함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다. 배변활동을 막는 화장실 자물쇠는 그 크기만큼이나 비인간적이고 비인류애적인 장치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과 사연이 그런 현상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작은 건물에는 화장실 청소가 귀찮은 주인이 자물쇠를 걸어 놓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그러나 언제 보아도 그런 건물의 상점들은 장사가 잘 안되거나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 정서상 화장실의 자물쇠를 보면 주인이 인색한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 상점이나 음식점을 피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맥도◯◯의 화장실 정책은 성공적인 판매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LA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없는 것은 한국에서 외곽 순환도로에 휴게소가 적은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IC간의 거리가 길지 않으면 주변에 빠져나갈 곳이 많고 이용 목적이 장거리보다는 단거리인 경우라면 휴게소 이용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든 결론적으로 LA고속도로에서 화장실이 급하면 구글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맥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고급 음식점이나 명품점 같은 부자들이 생활하는 곳에는 화장실에 자물쇠가 없고 서민이 사는 곳에는 자물쇠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인타임’에서 보였던 부자사회와 서민사회의 차이가 이제 미국사회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하였다. 비인간적인 행위가 사회 전체에서 수용될 때가 그 사회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때다.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남부에서 흑인을 사람이 아닌, 말하는 가축으로 생각했다. 그 사회가 용인한 비인간적인 보편적 인식이었다. 그때는 인종으로 차별선이 그어졌다면 이젠 부의 정도로 차별되는 사회로 진화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 흑인이 탈 수 없는 버스가 있었던 것과 지금 돈이 없고 지저분한 옷을 입으면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이 무엇이 다른가. 인류는 또다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자
본 기사의 저작권은 치과신문에 있으니, 무단복제 혹은 도용을 금합니다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치과의사회관 2층 / 등록번호 : 서울아53061 / 등록(발행)일자 : 2020년 5월 20일 발행인 : 강현구 / 편집인 : 최성호 / 발행처 :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 대표번호 : 02-498-9142 /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