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세계 최대 관광 대국이다.
코로나 시국 이전 2019년 통계에 의하면 매년 8,9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다.
수도인 파리에는 약 1,700만 명이 찾았으며 그중 700만 명이 에펠탑을 반드시 보러 간다. 그리고 남프랑스와 더불어 프랑스를 찾는 관광객이 꼭 방문하는 곳이 노르망디 끝자락에 위치한 몽생미셸섬이다. 몽생미셸섬은 파리를 기준으로 약 360km 떨어진,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있어 쉽게 다녀올 거리는 아니다. 게다가 0.97㎢의 작은 크기에 사는 인구도 2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3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프랑스 최고의 명소로 손꼽힌다.
많은 이들이 외지고 먼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딱 하나다.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 하나만으로 섬 위에 지어 올린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천공의 섬이라 불리는 몽생미셸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1,300년 전의 중세 유럽으로 떠나보자.
천사의 계시
몽생미셸의 아주 오래전 이름은 몽 통브(le Mont-Tombe)라 불렸다. 산을 뜻하는 몽(Mont)과 무덤을 뜻하는 통브(Tombe)를 합쳐 무덤 산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6세기 때부터 사람들과 떨어져 기도하고 싶었던 은둔의 신자들이 모여들어 작은 예배당을 만들고 지냈던 곳이었다.
그러다 708년 몽 통브의 건넛마을 아브랑슈의 오베르 주교의 꿈에 천사 미카엘이 나타난다. 꿈속에 천사는 저기 보이는 몽 통브에 자신을 기리는 성당을 지으라고 계시를 내린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어 접근하기에도 힘든 돌섬에 성당을 지으라는 계시를 오베르 주교가 처음부터 믿었을 리 만무하다. 얼마 후 다시 꿈속에 나타난 미카엘의 계시에도 그는 반신반의하며 망설이자, 세 번째 꿈속에서는 그의 의구심을 떨쳐버리려 미카엘은 손가락을 들어 주교의 머리에 하얗고 강한 빛을 쏘아 구멍을 냈다고 전해진다.
드디어 미카엘의 이야기가 정확한 계시라고 믿게 된 오베르는 수소문 끝에 492년 이탈리아 몽 가르강(mont Gargan)성전을 본떠 동굴 형태의 예배당을 만든다.
이후 대천사 미카엘의 프랑스어 버전 미셸(Michel), 산을 뜻하는 몽(Mont), 성스럽다는 생(Saint)을 합쳐 성스러운 미카엘의 산이라는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이라 불리게 된다.
프랑스 최고(最古)의 수도원
933년 바이킹의 후예들이 자리 잡은 노르망디가 이 지역을 점령하며 노르망디의 공작들은 이 예배당의 중요성을 재빨리 알게 된다.
966년에는 리처드 1세의 후원으로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관리를 시작했고 많은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돌섬 위에 건물을 증축하기 시작한다.
11세기와 12세기에 걸쳐 거대한 예배당을 포함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을 꼭대기에 건설한 후 돌섬을 따라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된 수도원 건물들을 짓게 된다. 암벽 지형에 맞춰 수도원을 지어야 했기에 당연히 수도원은 불규칙한 건축양식으로 건설된다.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 공작으로 영국을 점령한 이후 노르망디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비정상적인 관계에 놓인다. 프랑스 왕 필립 오귀스트는 노르망디를 다시 한번 프랑스 영토로 편입시켰고, 이때 화재에 휩싸였던 몽생미셸을 복원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필립 오귀스트의 후원으로 재건된 곳이 현재 몽생미셸에 남겨진 부분 중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북쪽 부분이며, 라 메르베유(경이로움)라 불린다.
또, 몽생미셸은 흑사병이 프랑스를 휩쓸 당시 많은 신자가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로마에 흑사병이 심해 희생자가 늘어나자,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기 위해 3일간 참회 기도를 드리고 시내 행진에 친히 참여한다. 기도 행렬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교황은 대천사 미카엘이 손에 든 칼을 칼집에 넣으며 전염병을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환시를 목격한다. 그가 환시를 본 곳에 교황은 미카엘 천사상을 세우라 했고 그곳이 현재 로마에 위치한 천사의 성이다.
대천사 미카엘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천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흑사병이 프랑스를 휩쓸 당시 수많은 이가 미카엘의 계시로 만들어진 몽생미셸을 찾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상징과 흥망성쇠
몽생미셸은 프랑스 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섬 밖에서 몽생미셸을 바라보면 수도원이라기보다 성에 가깝게 느껴진다. 14세기 116년간 이어졌던 백년전쟁 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영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당시 섬을 지키기 위해 지어진 부분이 성처럼 보인다. 노르망디 전 지역을 영국이 함락했지만, 몽생미셸만은 프랑스 최고의 장군 ‘베르트랑 뒤 게클랑’에 의해 지켜지며 프랑스인들에게는 외적으로부터 지켜낸 저항의 상징이자 자존심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
수도원은 백년전쟁 이후 회복했지만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수도원의 이권을 두고 갈등이 잦아졌고 1789년 대혁명의 불길이 이곳까지 다가와 모든 교회의 재산은 국가로 귀속되며 접근이 어려운 바다 가운데 있는 섬, 그 위의 수도원을 반혁명 군을 가둬두는 감옥으로 사용한다.
시간이 흘러 1836년 대문호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많은지식인이 몽생미셸 복원을 위해 노력을 하며 1863년 문화재로 지정이 되고, 다시 옛 영광의 모습을 찾아가는 복원 공사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1966년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다시 수도원을 찾아 머물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 형제회 수사와 수녀들이 종교적 소명을 이어가는 수도원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몽생미셸의 자연환경
몽생미셸섬은 대서양과 맞닿은 곳에 있어 1년 내내 바람이 강하고 비가 잦은 곳으로 유명하다.
여름에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우비나 우산을 권한다.
또 유럽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15m 정도로 가장 큰 곳으로 썰물이 되면 4만 5,000 헥타르의 갯벌이 펼쳐진다. 과거 순례자들은 이 갯벌을 건너 섬으로 들어왔다. 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신의 보호를 받았다고 느낄 정도로 위험천만한 여정이었지만 구원을 받기 위한 그들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19세기 복원 공사 시 제방길을 만들어 접근을 쉽게 했지만 퇴적되는 모래 때문에 섬이 아닌 육지와 합쳐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라 10년간의 공사를 통해 제방을 제거하고 셔틀버스를 통해 접근하는 등 2015년 마무리를 해 자연 친화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1년 중 45일 정도 12.9m 이상의 수위가 되는 날을 ‘대만조’라 부르며 날짜와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잘 맞추면 완벽하게 섬이 되는 몽생미셸의 가장 특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파리에서 출발해 당일로 다녀오는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체력적 부담을 덜 느끼는 여행자에게 권한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 거리를 하루 만에 버스나 미니 밴으로 다녀오는 것이 쉬운 여정은 아니다.
천년의 유구한 역사가 담긴 몽생미셸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곳에서 1박 이상 머무는 것을 권하고 싶다.
호텔은 섬 안에도 있지만 몽생미셸을 바라보고 있는 섬 밖의 호텔을 권한다.
1박 이상을 하려는 여행자 중 운전하는 것을 줄이고 싶다면 파리에서 브르타뉴 렌(Rennes)으로 가는 TGV 기차를 이용하면 2시간 이내에 도착하게 된다. 기차역에서 차량 렌트 후 1시간 운전으로 몽생미셸에 도착할 수 있다.
또는 파리에서 렌트를 한다면 중간중간 지베르니, 옹플뢰르 또는 르망, 사르트르 같은 작은 마을을 들러 여유롭게 가는 방법도 있다.
사람이 많이 찾는 성수기에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레스토랑 또한 예약해야 한다. 섬 안에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은 ‘라 메르 풀라르’라는 곳으로, 성지순례를 오는 이들이 비바람이 거센 갯벌을 건너와 머물며 먹던 수플레 오믈렛이 유명하다. 프랑스 대통령들도 방문하면 꼭 들렀다 가는 곳이다.
또 소금기를 먹은 풀밭에서 풀어 키운 양을 이용한 양고기 요리도 유명하다. 고기의 이름도 미리 간이 되었다는 ‘프레-살레(Pré-Salé)로 섬밖에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다.
여행자를 위한 팁
몽생미셸에는 오늘도 사람이 많다.
한때 야경이 유명해 인스타그램의 성지로도 불렸지만,이제는 더 이상 조명을 화려하게 비춰주지 않는다. 진정한 몽생미셸의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이 떠난 늦은 밤이나 아직 사람이 방문하기 전인 이른 아침이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바람이 남겨져 있는 곳이다. 종교 유무를 떠나 몽생미셸을 방문했다면 천천히 이곳의 적막을 느끼며 산책과 명상을 권하고 싶다. 프랑스의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마법 같은 시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