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른 곳(알테르 문디 Alter Mundi), 누구나 한 번쯤 여행하고 싶어 하는 수상도시 베네치아. 이민족들의 침략으로 인해 육지에 살던 사람들이 아드리아 해의 갯벌로 피난 와서 정착한 도시. 베네치아 본섬이라 부르는 역사지구는 크고 작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도보 이동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배를 타고 이동해야 만날 수 있는 섬들도 있다.
첫 번째 피난지였던 토르첼로(Torcello) 섬,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 마쪼르보(Mazzorbo) 섬, 주민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는 산 미켈레(San Michelle) 섬, 그 밖에도 고급 호텔 체인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호텔로 활용되거나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사용되는 섬, 흑사병이 창궐하면 시체를 모아두던 섬 등 다양한 섬들이 있다. 이렇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섬들을 구경하는 것도 베네치아 여행의 큰 재미다.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리공예 무라노 섬, 알록달록 부라노 섬, 베네치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리공예 무라노(Murano)
베네치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유리공예 기념품 가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컴퓨터 앞에 두어도 좋을 것 같은 아기자기한 사이즈부터 호텔 로비에 설치할 법한 거대한 샹들리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무라노 섬은 베네치아 본섬 기준 북동쪽에 위치한 섬이며 산 마르코-산 자까리아 정류장에서 숫자 7번 수상 버스를 타고 약 25분정도 이동하면 만날 수 있다.
과거 베네치아 본섬에도 수많은 유리공방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 발생했었던 화재의 원인이 유리공방의 화로로 지목되면서 1291년을 기준으로 베네치아 본섬의 유리공방들을 무라노 섬으로 옮기라는 베네치아 공화국 법이 발표되게 된다. 본섬에 흩여져 있었던 장인들이 한 곳으로 모이니 장인들 간의 기술교류도 활발해졌고, 유리공예 장인들의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관리하기에도좋았다. 처음에는 꽃병이나 접시, 컵 위주로 만들었다가 오늘날에는 호텔이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조명들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유리공예 산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과 하나 둘 경쟁이 심화되기도 했었고, 1797년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무너지면서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 산업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1920년대부터 유리공예 산업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51개의 유리공방이 무라노 섬에서 제품을 생산 중이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있으며, 5유로~10유로를 지불하면 유리공예품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곁에서 지켜볼 수도 있다. 무라노 섬의 유리 박물관에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알록달록 부라노(Burano)
무라노 파로(Murano Faro)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12번 수상버스를 타고 약 25분 정도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부라노 섬. 2,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이 곳은 집집마다 다양한 색상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서 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려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집들이 이렇게 알록달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기록 해 둔 문서를 찾을 순 없지만,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 특성상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본인의 집을 색칠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어부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레이스를 만들며 살아왔던 부라노 섬. 지금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레이스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때는 교황청 및 유럽의 왕실에서 부라노 섬을 직접 방문하여 레이스로 된 의상이나 테이블보를 요청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과거 주력 생산품은 테이블보였으나 오늘날에는 스카프, 부채, 아기옷, 소소한 기념품 등 다양한 제품들을 선 보이고 있다. 레이스 박물관도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는 2012년 5월 11일에 발매된 가수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부터 부라노 섬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이 곳의 모습들이 소개되면서 사진 촬영을 하러 많이 방문하고 있다.
베네치아 와인 생산지 마쪼르보(Mazzorbo)
부라노 섬과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걸어서 5분이면 만날 수 있는 마쪼르보 섬.
베네치아 석호 내의 유일한 와인 생산지며,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산책로는 누구에게나 상시 오픈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과연 와인 생산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와인 생산자인 비솔(Bisol) 가문이 한 때 사라졌던 베네치아의 도로나(Dorona) 포도 품종을 되살려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해마다 최대 약 4,000병 정도만 한정 생산하면서 750ml 보다 작은 500ml 1병에 약 20만원정도(150~190유로)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땅에 포도를 심고, 주변에는 채소를 재배하여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베니싸(Venissa)에서 소비하고 있으며, 이 곳 레스토랑은 미슐랭 1스타 식당으로 선정되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베네치아 본섬에서 잠시 벗어나 포도밭 가까이에서 한적한 기분을 만끽하며 와인을 마시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아주 비밀스럽고 평화로운 섬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Lido)
베네치아 리도 섬 만의 특별한 점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우리나라 제주의 우도처럼, 차를 실을 수 있는 17번 수상버스가 리도-트론게토 정류장을 오고간다).
리도 섬은 베네치아 본섬과 아드리아해 사이에 위치하며, 약 12km에 걸쳐 길쭉하게 펼쳐져 있는 섬으로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한다. 리도 섬 내에는 버스나 택시 같은 운송수단도 있다. 여행자들은 리도 섬 수상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를 활용 할 수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리도 섬을 좀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도로를 따라 가로수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해변에는 고급 휴양주택이 줄지어 있어서 지중해의 부유한 휴양 도시 같은 느낌도 든다. 베네치아에서는 리도 섬의 해변에 가야 비로소 파도치는 바다를 만날 수 있는데, 겨울에는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지만, 여름철이 되면 해수욕과 태닝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문학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이 베네치아 리도 섬의 바인스 호텔(Gran Hotel de Bains)에 머물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썼고, 그 밖에 요한 볼프강 괴테, 고든 바이런 등의 시인과 작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해마다 9월에는 전 세계 유명 인사와 배우, 영화감독들이 리도 섬으로 모인다. 1932년에 제1회를 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로 손꼽히는 베네치아 국제영화제가 리도 섬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베를린, 칸과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기도 하는데 1987년에는 대한민국 배우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1942년까지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의 이름이 ‘무솔리니상’으로 불리다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황금사자상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베네치아에는 이처럼 본섬 외에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섬들이 있다. 베네치아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조금 더 여유있게 일정 계획을 세워서 베네치아 본섬의 박물관, 미술관도 입장해 보고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섬들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