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이렇게 시작된다.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쓰였지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읽히고 있다.
누구에게나 숙명의 숙제 같은 책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작품들이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철학적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기에 항상 엄두가 안 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중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서사시다. 유럽 문명 최초의 고전 문학이자 ‘오디세이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와 이후 서양 문명의 문학, 예술,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호메로스가 저자라고 전해지지만,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지던 이야기를 편집했다고 여겨지며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를 시기에 문자로 기록된 그야말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트로이아 전쟁 중 51일간의 이야기다.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사 아킬레우스,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한과 복수,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할지언정 명예로운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신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 인정받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트로이 원정이 바로 ‘일리아스’의 배경이다. 슐리만의 트로이 유적지의 과학적 측정 연대는 대략 3,000여년 전, 문자 기록이 없는 때로 트로이아 전쟁은 청동기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팽창기에 있었던 국가 간의 큰 충돌로만 인정받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에 고고학적 증거로 어느 정도 사실로 인정되는 이야기에 당시 그리스인의 사고방식 중 하나였던 신들의 개입이라는 신화적(神話的) 요소를 더해 탄생한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시가 바로 ‘일리아스’다.
‘일리아스’를 이해하려면 ‘트로이아 서사시권(Epic Cycle)’을 알아야 한다. 8편의 서사시로 구성돼 있는데 첫 편 ‘퀴프리아’가 위대한 비극의 서사다. 우리에게는 ‘파리스의 선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번역본으로 7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인 두 번째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영웅 헥토르와 인류 최강의 전사 아킬레우스의 대결로 유명하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은 트로이아 원정 10년이 지난 때부터다. 그리스 진영의 총사령관이자 트로이아 전쟁의 시발점인 헬레나의 남편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내달라고 한 것에서 시작된다.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스를 어쩔 수 없이 내준 아킬레우스는 전투를 거부했고, 전세는 트로이 진영으로 급격히 기울게 됐다. 이후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만약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조금만 참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일리아스’는 인류의 보편적인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녹아있는 서사시로 한 사람의 감정이 전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가장 강한 영웅이지만 개인인 아킬레우스가 화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 연합 전체가 무너질 뻔했다.
‘일리아스’는 영웅의 이야기를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아킬레우스, 명예욕과 권력욕의 화신 아가멤논 모두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 치과계를 대변한다는 협회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일리아스’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