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치과 디지털화는 방사선 영상장비에 국한된 사안으로 여겨졌다. 방사선 엑스레이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K사는 더 이상 필름을 생산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사가 손에 필름을 들고 형광판에 비춰 판독하는 모습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 영상 정보는 환자 정보관리 각 과정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한 또 다른 방어막을 설치해야하는 현실적인 번거로움이 덤으로 생겼다. 하지만 치과 디지털화라는 전체적인 틀에서 이 같은 번거로움은 감내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디지털 시스템, 보철수복과 만나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진단영상장비의 디지털화에 이어 보철수복 분야에도 서서히 디지털 시스템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CAD/CAM 시스템이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며, 이는 주로 기공과정에 국한된 시스템이다.
주요 업체들은 전국에 밀링센터를 설치하고, 기공소에서 석고모형으로 스캔한 정보를 디지털파일로 전환해 캐드로 디자인을 완료하고 밀링머신에서 보철물을 깎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치과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상을 채득하고, 채득한 인상물을 기공소에 보내 기공소에서는 이를 석고모형으로 제작한다.
이 중 디지털화된 과정은 석고모형을 디지털 스캐너로 스캔해 그 정보를 밀링센터로 보내는 정도에 불과하다.
보철 수복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인상채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상재를 구강 내에 장착시키고, 이를 통해 임프레션 결과물을 얻는 전통적인 인상채득 방식은 아무래도 정밀한 결과물을 얻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인상채득 방법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고, 관련 업계에서도 술자의 숙련도에 따른 오차범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재료와 도구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일 인천시치과의사회 학술대회에서 디지털 인상 관련 강연을 펼친 김종엽 원장(스마트치과)은 “그간 반유동성 재료를 구강 내에 위치시키고, 경화되면 제거하는 전통적인 인상법이 사용돼 왔고, 재료 또한 눈부시게 발전돼 왔다”며 “하지만 이런 인상채득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복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변수와 문제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캐드캠 과정이 보철기공 과정에 국한됐다면, 디지털 인상 시스템 즉 오랄 스캐너의 개발 및 보급은 진정한 디지털 치과의 시작을 의미한다.
디지털 인상, 1세대 넘어 2세대로
디지털 인상 시스템의 상용화는 1980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몰먼과 브랜데스티니 교수에 의해 개발된 Ceramic Reconstruction(CEREC)에 기인한다.
최근에는 Cadent사의 iTero가 디오를 통해 국내에 보급되면서 디지털 인상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밖에도 3M ESPE의 Lava C.O.S 등 국내에는 4~5개 시스템이 출시됐다.
또한 최근에는 Zfx캐드캠 시스템과 연계한 Zfx 디지털 오랄 스캐너가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국내 출시는 아직 미정이지만 헨리쉐인과 3M, 이보크라비바덴트 등 해외 유수의 치과업체들이 합작한 D4D 등이 선보이고 있어 디지털 오랄 스캐너 시장은 이미 해외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제품들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업그레이드가 될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디지털 오랄 스캐너를 임상에 도입하고 있는 박지만 교수(이대목동병원 보철과)는 “현재 디지털 인상 시스템은 1세대와 2세대로 구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세대 오랄스캐너는 치아 부위를 수십 회 사진을 찍어 이를 하나의 파일로 만드는 방식이다. 반면 2세대 방식은 치료부위를 동영상을 촬영하듯이 쭉 훑어 찍는 방식이라 더욱 간편하다.
또한 제품에 따라 캐드 파일을 얻는 것까지만 활용하는 시스템이 있는가 하면, 스캔해서 캐드파일을 자체 생산해 밀링머신으로 전송하는 데까지 이르는 시스템이 있다.
디지털 인상 시스템의 국내 보급은 다양한 업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독일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A사 관계자는 “디지털 인상 시스템은 아직 초기단계”라며 “디지털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전통적인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확도에 있는데,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RP(모형)제작 시스템부터 확실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업체들의 경우 이미 국산화를 위한 준비를 끝내고 출시 시점을 엿보고 있다. 국산 캐드캠 업체인 B사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초에 국산 디지털 오랄 시스템을 출시할 계획”이라며 “고가장비 일색의 디지털 시장에 고품질의 중저가 제품이 출시된다면 고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인상, 아직은 이르다?
인상재를 이용한 전통적인 인상채득 방법은 일단 술자의 숙련도에 따라 그리고 재료와 도구에 따라 정밀도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특히 보철수복의 근간이 되는 인상채득은 최종 보철물의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디지털 인상 시스템은 최소한 반유동성에 따른 오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더욱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환자의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것.
박지만 교수(이대목동병원 보철과)는 최근 2~3년간 디지털 오랄 스캐너를 사용해 진료를 해오고 있다. 그는 그간 환자의 80% 이상을 디지털 인상 시스템으로 진료했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는 “인상재를 섞고, 트레이에 올리고, 환자 구강에 장착하는 일련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진료 과정이 간소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심한 경우 어떤 환자들은 인상채득 시 이물감으로 인해 헛구역질을 하거나 경화되기까지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디지털 인상 시스템을 이용하면 이 같은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인상 시스템이 환자들에게 어필 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한 인상을 채득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체들은 아직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 업체의 경우 디지털 오랄 스캐너 출시 후 단 한 대도 보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이 제품은 국내 판매가 중단됐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인상 시스템 도입이 최근 몇 년간 개원가에서 유행처럼 번진 ‘장비마케팅’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디지털 인상 시스템 출시를 앞두고 있는 모 업체 대표는 “디지털 영상장비의 경우 필름을 디지털로 전환했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도구 교체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빨리 변환이 됐을지 모르지만, 보철수복 분야의 디지털화는 의료진의 술기를 장비가 대신해 준다는 측면에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고 강조했다.
박지만 교수는 “디지털 인상 시스템은 단순한 도구의 교체가 아니다”며 “치과 전체를 디지털 시스템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제반 요건을 스스로 준비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가장비를 구입해 치과를 홍보하는 장비마케팅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물론 개중에는 이를 잘 활용해 환자와 술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수 천 만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장비를 치과 귀퉁이에 놓고 장식용으로 바라만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치과를 고수하기보다 디지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C원장은 “디지털 인상 시스템은 어쩌면 치과 디지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며 “시술과정은 물론, 치료 후 환자와 술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도출 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장비와 시스템만 교체한다고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개원의들도 나름대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적절한 디지털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디지털 치과, 결국 교육이 우선 돼야
정밀가공분야에 있어서 최대 강점을 지니고 있는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은 이미 디지털 치과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국내 소개되고 출시된 캐드캠 등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 시스템 또한 대부분 유럽의 제품들이다.
임플란트가 그랬듯이 보철수복의 디지털 분야 역시 국산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결국 품질력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적인 측면과 활용도 면에서 국내 개원가의 실정에 맞는 제품이 출시된다면 디지털 치과를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 지향적인 디지털 시스템의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자칫 치의학의 향방이 업체들의 경제논리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모 치대 교수는 “치의학 자체가 산업지향적인 측면이 다분하지만, 디지털 치과로의 변모할 때는 이 점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며 “따라서 관련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와 교육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인상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 가치를 판달 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는 부재한 실정이다.
‘디지털은 좋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다가가기에는 최근의 치과계 사정이 녹록치 않다. 디지털 저변이 확대되고 환자들에게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문적 고찰을 더욱 중요시 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더욱 활성화 돼야 할 것이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
Interview | 박지만 교수 이대목동병원 보철과
“단순한 도구의 교체 아닌 시스템의 변화로”
박지만 교수는 “치과 디지털화는 단순히 도구의 대체가 아닌 치과 전체 시스템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을 필요없게 만들었다기보다 누구나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게 했다는 ‘혁신’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디지털 오랄 스캐너 및 캐드캠 관련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임상에서의 활용도 매우 적극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는 싱글은 물론 최근에는 풀마우스 케이스까지 디지털 오랄스캐너를 활용했다.
박 교수는 “디지털 오랄 스캐너를 도입하고 최근 2~3년간 진료의 80% 이상 디지털 인상 채득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가 디지털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임상 과정의 혁신적인 간소화가 선사하는 편익은 물론, 보철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요소인 인상채득을 보다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박 교수는 “물론 시스템마다 오차 범위가 있기 마련이지만, 디지털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화할 수 없는 부분까지 비교적 정확한 값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조건 디지털을 선호한다고 해서 치과진료가 혁신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높은 기대는 자칫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장비 도입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조금은 위험한 생각이다.
박 교수는 “디지털 기술의 치과 도입이 매우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오랄 스캐너만 하더라도 디지털 정보 파일이 인상재를 대신하기 때문에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치과 인프라 조성이 현재로서는 시급한데, 개원가에서 디지털 시스템을 단순히 ‘장비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경우 오히려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상재 없는 치과, 왠지 어색한 느낌이지만, 디지털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치과 디지털화를 차분하게 준비해야 하는 시점일지 모르겠다”는 박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치과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적 시점에 도달한 것은 분명하다. 단순한 도구와 마케팅의 수단으로 디지털에 접근하기보다 전체적인 틀의 변화라는 측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