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논단] 무엇이 우리를 우아하게 만들까?

2026.04.17 07:47:14 제1156호

이수형 논설위원

치과의 일상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쟁터다. 아무리 윤리적이고 evidence-based로 충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눈먼 총알이 나에게 날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른 치과에서 빼자고 한 치아를 고생해서 살려 놓으면, 데스크에서 비용으로 거친 실랑이를 하는 일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의료급여 1종 환자라도 본인 구강 상태를 알아야지 싶어 파노라마를 보여주며 보험가능한 진료들을 한참 자세히 설명했더니, 다음날 술냄새를 풍기며 동사무소에서 긴급의료비 지원 150만원을 받게 해달라고 데스크와 필자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정성에 대한 감사는 드물고, 노력이 허탈한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일이 비상식적으로 흔하다.

 

이런 상황에 각자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같은 직업을 가진 우리 치과의사들뿐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치과계의 크고 작은 선거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느낀 피로감이 컸다. 나이와 학교를 불문하고 다 같은 동료이고 머리를 맞대도 부족한데. 왜.

 

뭐 부모 재산으로 싸우는 건 남이 아니라 형제들이니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우리 치과계는 나눠 가질 무엇도 없는데 뭐 땜에 싸우는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들처럼, 많은 것들이 새어나가고 있는데 그중에 명예와 우아함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누군가 대한민국 치과의사의 명예와 우아함을 논하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매일 환자의 침과 피를 맞아가며 환자의 입속을 헤매다가 청춘을 소진하는 것도 억울한데, 우리네 치과의사들에게 우아함이란 손에 닿지 않을 도달 불가능한 그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우아함’에 대한 공부를 좀 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귀족들에 해당하는 시기 귀족들의 명예와 우아함에 뭔가 실마리가 있지는 않을까 알아봤다. 스페르차투라에서 시작해서 귀족들의 명예 결투까지 며칠간 알아봤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 분량이 족히 10페이지는 되는 듯하다.

 

명예와 로망이 살아있던 과거와 달리, 현시대는 돈과 물질 위주로 모든 것이 재편되어버린 상황이다. 과거의 우아함을 되살리자고 이야기해봐야 헛되고 정신승리밖에 되지 못한다. 겸손의 미덕과 무형의 노력에 대한 존중과 상대에 대한 선의가 다 무엇이더냐. 사람 목숨까지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관에서 우아함을 좇는 외눈박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려나 싶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은 그렇다. 현시대에서 우아함은 돈으로 사야 한다. 명품을 사서 입으라는 게 아니다. 치과는 더 비싸고 어려운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료실에서 묵묵하게 내면의 평온을 지키며 본업에 충실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높은 가격과 매년 부단히 노력하는 가격인상만이 우아함을 담보할 수 있다. 저 한편에서 최저가를 갱신하며 요란하게 광고를 때리고 있는 모지리들과 선을 그으려면. 자기 몸의 소중함과 거기에 합당한 치료의 고마움을 타인인 치과의사보다도 모르는 저 모지리들과 선을 그으려면.

 

우아함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각개전투’ 중인 탓도 있다. 진정한 우아함은 동료들을 적 아니면 아군으로 나누는 끝없는 정쟁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경험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우리’라는 개념을 공고히 구축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환자가 우리의 노고를 돈으로 치환하려 할 때, 우리끼리라도 서로의 가치를 ‘격조’로 예우해 줘야 한다. 우리 내부의 진흙탕 싸움을 멈추고, 외부의 천박한 논리가 침범할 수 없는 ‘우아한 장벽’을 세우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음 맞는 이들끼리의 모임이 될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에게는 학회나 동문회 활동이 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협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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