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3.06.10 16:52:01 제546호

대마도 자전거여행-3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새벽! 잠에서 깨어나니 여기가 대마도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침 산책을 시작한다. 오하시 여관을 나오니 어제와는 느낌이 다르다. 조그만 도시!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좁은 골목의 이 도시! 어디를 보더라도 규모는 작지만, 그 청결함과 사람들의 근면성, 예절이 몸에 밴 생활, 또 전통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그런 점은 분명 선진국의 시골풍경이다.

 

오늘은 무라세 씨 부부가 특별히 개발한 코스를 돌기로 했다. 신라문화가 전래된 가이진 신사와 한일무역 중 조난자를 기리는 위령탑을 달리기로 하였다. 무라세 씨도 대마도가 신라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을 인정하는 듯했다. 키사카 오마에하마 공원으로 업힐 라이딩이 시작된다. 조금 오르니 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으로 흘러들어온 해초 등을 모아 비료로 삼기 위해 모아둔 헛간인 모고야가 있고, 풍어·풍작·다산을 기원하는 야꾸마마쯔리 탑이 서 있다.

 

일본인들이 좁은 농토를 지혜롭게 가꾸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부근에 일왕이 다녀갔다는 카이신 신사가 있다. 이곳에 신라 문화가 전해졌다고 한다. 특별코스는 워낙 경사가 급해 차로 조난자 위령탑까지 올라 전망대에서 우리가 왔던 부산항을 바라보았다. 길이 워낙 험하고 경사가 심해 버스 관광객은 가지 못한다고 자랑을 한다. 전망대에서 본 오우미 해안은 대마도 최고의 일몰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준비체조 후 본격적인 2일차 라이딩에 나선다. 니이를 향해 오하시(대교)를 건넌다. 코스는 여전히 5%의 경사와 500m 정도의 업힐, 터널, 다운힐의 연속이다. 계속 나타나는 숲길, 찬란한 아침햇살이 숲 사이로 비치면서 황홀한 비경이 연출된다. 피톤치드를 한껏 마시며 달리는 필자는 한국에서보다 심한 운동에도 피로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역시 삼림욕 라이딩이다. 도요타마초 방향으로 코스를 잡으러 니이의 밸류마트에서 도시락을 구입하고 와타즈미 신사로 향한다. 일본 건국의 신이 바다에서 왔다고 바닷가에 신사문이 서 있고 해안 깊숙한 곳에 신사가 있다. 일본 사람들도 선조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와타즈미 신사가 위치한 산 정상에 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에 오른다. 10% 이상의 경사에 700~800m의 거리다. 펼쳐진 장관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리아스식 해안에 크고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는 바다! 아소만의 비경 속에 빠져든다. 와타즈미 신사를 떠나 원래 코스로 페달을 밟는다. 39번 도로로 기타노오베 터널을 넘는다. 1시간 이상을 달려 저 멀리 만제끼바시(만관교)의 빨간 아치형 사장교가 보인다. 대마북도와 남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다리의 높이와 협곡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 예전에는 북도와 남도가 분리되지 않았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막강 발틱 함대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동아시아의 대마도에 당도해서, 잠깐 쉬고 있을 때 북도와 남도를 운하로 뚫고 숨어있던 일본 함대에 측면을 기습당했다. 섬을 돌아야 만날 것으로 생각했던 일본함대가 갑자기 나타나 기습을 하니 지친 러시아 함대가 당해낼 수 없이 전멸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운하 위에 놓은 다리가 만제끼바시다. 이 다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운하, 그 옛날 러일전쟁의 모습을 떠올린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다리가 나타난다. 대선월의 뜻을 가진 오후나코시 다리다. 신라의 배가 도착하면 배를 들어 일본 쪽으로 옮기고 갈 때는 반대로 배를 옮겼다는 곳이다. 일본과 신라의 교류를 상징하는 다리라고 힘주어 무라세 씨가 말한다.

 

게치로 들어서면서 관광버스에서 우리를 보고 펄쩍 뛰며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동호회 바이콜릭스 대원 부부가 관광여행 중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외지에서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반가운가 보다. 그것도 같은 팀의 대열이 이국의 거리를 누비는 멋있는 장면에 가슴 뭉클 눈물이 났다고 한다. 땅거미 지는 아소만 업힐! 제일 긴 1Km의 8%의 빡빡한 업힐이다. 다께사키의 숙소인 시즌민숙으로 가는 길이 멀기도 하다. 24번 도로에서 197번 도로로 어두워지는 아소만의 해안을 시속 27~28Km의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해안도로 끝에 시즌민숙이 아스라이 나타난다.

 

저녁의 노을진 하늘에는 수백 마리의 솔개떼가 꺼욱 꺼욱 울어대며 우리를 환영한다. 민숙에서는 우리를 맞이하려 저녁준비가 한창이다. 각종 조개, 생선, 돼지고기, 버섯, 고구마, 야채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입맛을 돋운다. 공중목욕탕이 딸린 다다미방 민숙에서 목욕하니 피곤이 날아가 버린다. 이틀간 대장정을 마친 대원들의 성취감이 만찬장에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케 한 잔으로 다음날 마지막 라이딩의 성공을 다짐하며 우정은 끝없이 이어진다. 아소만의 칠흑 같은 바다물결에 우리의 함성이 젖어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대마도의 역사와 자연을 누비며 10%, 500m의 업힐 30개를 무난히 돌파하였다. 내일을 기약하며 아소만의 파도소리 속에 스르르 무겁게 잠이 내리고 있었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새벽에 잠을 깨니 다께사키의 해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안가로 밤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낚싯배가 들어온다. 시즌민숙은 낚시전문여관인 모양이다. 주인이 한국 사람이라 얘기가 편하고 또 대접도 융숭했다. 깔끔한 여주인이 준비한 아침상! 간단하면서도 맛깔스럽다. 생선구이, 야채, 계란찜 등이 입에 달라붙는다. 주인과 작별을 하고 우장을 한다.

 

비오는 날 라이딩은 도로 상태나 시야가 완전치 않아 저속주행이 원칙이다. 오늘 우리는 이즈하라로 간다. 고갯마루에서 뒤돌아보는 다케시타 항은 배들이 옹기종기 묶여있고 집집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게치로 나가 382번 도로를 달려 이즈하라로 향한다. 빗길이라 차도를 버리고 인도를 택한다. 울퉁불퉁한 인도를 어렵게 달리고, 마을을 수없이 지난다. 이즈하라 터널 앞에서 갑자기 경찰이 우리 밴을 세운다. 무슨 일인지 몰라 멈춰서 길 건너를 보았다. 큰일이 났나 했더니 한일우호 플래카드가 번호판을 가렸다고 경찰이 손수 번호판을 보이게 해주었다. 경찰관의 친절함에 감동하였다. 터널을 지나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에서 라이딩을 접는다. 덕혜옹주 결혼비는 비극의 역사를 얘기하며 비를 맞고 돌아보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였다.

 

100엔 숍을 쇼핑하고 무라세 씨가 선사한 가께우동, 마지막 점심은 정통 일본의 맛을 느끼게 했다. 비를 맞으며 우리를 환송하는 무라세 씨의 성의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빗속에 이즈하라 항을 떠난다. 거센 빗방울과 거친 파도를 가르며 오션플라워호는 부산을 향해 어두워지는 바다를 달린다. 우리의 가슴엔 대마도의 추억을 가득 담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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