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교를 지나 골지천은 우리를 무릉의 세계로 인도한다. 소리 없이 우리를 안내하던 강이 이곳부터는 바위에 부딪히고 구불거려 마치 북을 치듯 아우성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바위투성이 강은 이리저리 요동치며 바위틈을 빠져나간다.
한 구비, 두 구비, 수십 구비를 지나 돌아서는 그곳 강바위 위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정자, 구미정이다. 조선 숙종 때 이자가 이곳에 낙향하여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고 구미정이라고 짓고 유유자적했다는 정자다. 이곳부터 강은 작은 폭포를 이루어 물고기 떼가 솟구치는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이 폭포 위쪽에 삿갓을 놓아 고기를 잡았다고 어량(魚梁)이라고 했다.
폭포에 치솟고, 노니는 고기떼가 매우 아름다워 제 일미가 어량이란다. 이 고기를 잡아먹는 맛 또한 일미라 해서, 옛말에 누가 밥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했던가? ‘이식위천(以食爲天)’ 먹는 것을 하늘 삼는다 했으니 폭포를 거슬러 치솟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맛을 으뜸으로 했던가. 삶이 비록 세속의 실낱에 매달린 고난일지라도 선계(仙界)를 그리고 안락한 너럭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 폭포에 치솟는 물고기를 벗 삼으면 이것이 극락이고,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속세에 멍든 마음 한 겹 벗겨 내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움켜쥐고 눈 한 번 돌리면 청산이 바로 여기인데. 구미정에 앉아 구미(九美)를 얻었다면 무엇이 부럽겠는가. 이곳이 자족공간이고 풍월의 원천이다. 정선아리랑이 함께 하면 또 다른 유장한 멋이 아니겠는가?
구미정의 아름다움에 혼이 빠져 우리는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달래고 다시 돌아내려 오는 골지천. 무수한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강에는 바위 사이를 부딪치고 뒹구는 물소리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골지천을 따라 임계로 향한다. 골지천은 임계천에 임무를 건넸다. 임계천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니 조그만 면 소재지 임계가 보인다.
이곳에서 산채정식으로 이름난 신촌식당에서 허기를 달래려 한다. 늦은 점심이다. 반갑게 맞이하는 여주인은 “산채를 보면 놀랄 것”이라고 농을 친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조금 있으니 여러 개의 쟁반에 산채가 나온다. 더덕, 머위, 취나물, 곰취, 호박, 표고버섯, 우엉, 갓, 고추,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오가피, 누리대, 아스파라거스, 가지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아직 찬이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식탁이 꽉 찬다. 여기에 고등어조림, 나물국, 동동주,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반찬이 제각기 자신의 향을 내뿜고 있다.
대부분 외국산을 먹을 수밖에 없는 서울사람들이 정선의 고산나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자전거 덕에 자연산 토종 나물을 먹다니, 입속에 나물의 향내가 가득하였다.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서니 저 멀리 백두대간의 산군이 첩첩이다. ‘저길 어떻게 넘나?’라는 걱정이 스치듯 지나간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처음 몇 km는 임계천이 우리를 따라 달린다. 임계천이 사라지자 밭들과 함께 길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한 굽이 위 저 높은 곳에서 차들이 돌아내려 온다. 구부러진 굽이마다 경사각을 더한다. 언제나 그렇듯 장거리 업힐 라이딩은 템포가 중요하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힘으로 템포에 맞춰 페달을 밟지 않으면 금새 지쳐 주저앉기 십상이다. 산악 라이딩 7년 경력이 페달을 밟는데 주저 없이 차근차근 올라가게 한다. 정상을 쳐다보면 조급증이 나기 때문에 항상 4~5m 앞과 주변을 살피며 올라가야한다.
장거리 업힐은 사람에게 인내와 겸손을 요구한다. 조급증이나 자기과시는 자전거에서 내려와야 하는 라이딩 포기의 결과를 불러온다. 언제나 자신의 힘보다 조금 여유를 갖고 앞사람을 추월한다는 생각은 없어야 한다. 에코브리지터널(생태터널)에 오르니 갑자기 한겨울이다. 주섬주섬 바람막이를 입고 덜덜 떨며 달린다. 역시 강원도의 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10도 이상은 기온이 낮은 듯했다. 주변에 핀 쑥부쟁이, 구절초 등이 추워서 떨고 산유채도 추워 가지를 움츠린다. 멀리 능선이 푹 꺼진 곳이 아마도 백복령인가보다. 있는 힘을 다해 남은 체력을 쏟아 붓는다.
돌아 올라간 곳이 750m의 갈고개다. 그렇다면 백복령은? 한숨이 나온다. 칡이 많이 자란다고 갈고개로 불리는 백복령 전 큰 언덕! 저 멀리 보이는 백복령을 향해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진다. 힘이 부칠 때마다 휘몰아치는 삭풍에 정신을 차리고, 응원하는 야생화를 보며 그저 오를 뿐이다. 정상을 자주 보면 힘이 빠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의 모습이 낮아지며 하늘이 보인다. 백복령 표지석이 멀리보이는 지점, 전신의 힘을 쏟아 경사도 10%의 백복령을 오른다. 지나가는 구름마저도 우리의 라이딩을 응원하는 듯, 아무도 없는 야생화가 손짓하는 그곳에 백복령(780m)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한겨울 삭풍이 부는 백복령에서 우리는 넋을 잃고 동해를 바라보았다.
정선 주민은 이 고개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피눈물 나는 삶을 견디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를 넘어간다’는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한참 정선아리랑을 부르며 우리는 그 옛날 정선 주민이 되어갔다.
다시 다운힐. 무려 10여km를 내려가야 했다. 자병산자락의 백복령에서 내리꽂는 다운힐은 경사가 급경사라, 한번은 쉬어 브레이크 켈리퍼의 열을 식혀야 했다. 특히 남연치의 급경사는 모두를 아찔하게 한다. 경사계가 12~13%를 나타낼 때가 있었다. 달방저수지를 돌아내려 오는 길, 잠깐 무릉계곡에 들렸다. 오늘이 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가두 퍼레이드를 한 기구들이 삼화사 경내에 즐비하다. 무릉계곡 반석바위가 있는 곳에서 라이딩을 마치고 대학동창이 있는 삼척으로 페달을 밟는다. 점점 어둠이 내리는 삼척, 우리는 안전을 위해 83km의 산악 라이딩을 접는다. 밴으로 도착한 삼척 팰리스호텔 옆의 횟집에서 보고 싶은 대학 동창들이 정겹게 한잔을 나누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동문이 너무 고마웠다. 이제 나이가 들어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세대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한 잔 술을 나누며, 잊혀진 정을 나누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우리 팀이 있는 방으로 건너왔다.
다들 백복령 정복 후 ‘브라보’를 외친다. 역시 자전거 운동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건강의 보약이란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는 삼척, 해변언덕 네온사인이 그 빛을 더하는데, 친구와의 만남을 잊지 못하는 나그네는 멀리서 내려다보는 듯한 백복령을 바라보며 밤의 정적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